불교에선 죽어서 다음 생을 받기까지, 그러니까 저승에 안주(安住)할 때까지 七七日 걸린다고 했다. 그 49일을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이라고 한다. 고인에게 49재를 지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아직 저승 가는 도중이겠지만 그의 사후(死後) 폭풍이 되우 거세다. 죽음으로써 완전히(完) 종(鐘)을 쳐 끝낸(終) 게 아니라 조종(弔鐘) 울림은 계속되고, 이래저래 죽어서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를 ‘죽은 제갈 양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死諸葛走生仲達)’ 고사에 비유하면 어떨까. 제갈 선생이 오장원(五丈原)에서 병사하자 라이벌 사마의(중달)가 천문을 보고 제갈의 죽음을 감지, 촉군을 맹추격한다. 그런데 거기까지 예견한 제갈 양이 자신의 모습을 목상(木像)으로 만들어 세우자 멀리서 바라본 중달이 제갈공명이 여전히 살아 있는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는 삼국지 고사다. 망원경 없던 시절의 희극이라고나 할까.

“날 죽여? 어디 네X들 두고 보자! 이완구 너부터!” 식으로 남긴 유서 ‘성완종 리스트’가 일파만파다. 도대체 그의 금력이 권력, 금융계 등과 얼크러진 인맥 암호지도가 어디서 어디까지 그려진 건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지경 아닌가. 과시 돈 모으는 데 천재였고 사방팔방 로비, 인맥 구축에 귀재였다. 그런데 그에게 제갈공명처럼 사후까지 내다본 안목이 있었다면 ‘사면 로비, 사면 거래, 사면 시장’이라는 웃지 못할 말까지 도처에서 불거지는 등 대통령의 사면권까지 웃음거리로 만들 것이라고는 내다보지 못했을까. 참으로 가증스러운 건 또 안 봐도 빤한 걸 잡아떼는 후안무치다. 이석기 같은 내란 음모, 국가 전복까지 기도한 자까지도 사면, 금배지를 달아준 집단 아닌가.

선의의 피해자가 안타깝다. 대출 관련 은행권, 금융회사 손실은 그렇다 치고 법정관리, 상장 폐지로 개인 투자자 손실만 수백억이라고 했다. 또한 경남기업과 계열사가 짓는 아파트만도 전국에 수도 없다. 그게 모두 중단된다면 날벼락 아닌가. 웰 빙보다 웰 다잉(well dying)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사리잡놈도 그 죽음만은 엄숙한 법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경받는 삶에 성완종은 관심이 없었던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