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거세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무산으로 한국정치의 후진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받은 충격도 커 보인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끊이질 않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한 발 뒤로 빼는 한심한 행태는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가 돼버렸다. 잘못될 경우 국가 재정을 거덜낼 수도 있는 중요한 사안을 과연 무책임한 정치인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인터넷상에서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 대한 비난으로 넘쳐나고 있다.

시간이 가면 모든 게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 하고, 말 바꾸고, 남의 탓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후진성을 못벗는 우리 정치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여·야 지도부는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애초 합의보다 무리한 추가요구를 하고 있다”고 하고, 새정치연합은 “대통령의 눈치를 본 여당이 우리와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서로 맹비난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함께 처리키로 했던 연말정산 환급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 영세 자영업자의 상가 권리금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주요 민생법안 처리도 줄줄이 무산됐다. 또 누리과정 예산 충당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서 지방재정법 개정안과 경기도에서 실시 중인 생활임금제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최저임금법은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조선인 강제징용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규탄 결의안’ 등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초당적인 결의안도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우리 정치권은 국민적 비판은 물론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정치권은 늘 입으로는 민생과 경제를 우선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정쟁의 구태에서 헤어나지 못해 국회의 기본 책무이자 고유권한인 법안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여야 모두 이번 회기를 시작하면서 경제 활성화와 민생문제 해결 등 ‘경제우선’을 외쳤던 것도 4·29 재보선을 의식한 공약(空約)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민생법안을 상대에 대한 보복 무기로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회. 언제쯤 후진성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