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고개 험하고 김상로 묘지 부담
새길 모색중 안양에 돌다리 건설 명령
‘만년간 백성 편하게’ 이름도 친히 하사


오늘은 200여년 전 왕이 걸었던 곳을 걸어볼거예요. 박물관을 갈거냐구요? 아니에요. 박물관 바깥, 여러분들이 사는 동네에 그런 곳이 있어요. 바로 조선 정조대왕이 건넜던 다리, 안양의 만안교랍니다.

안양시 석수동에는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삼막천이 있답니다. 그 위를 가로질러 그림처럼 예쁜 돌다리가 있지요. 물길이 7갈래로 갈라져 흐르도록 무지개 모양의 수문 7개를 가진 홍예 석교랍니다. 길이가 30여m, 폭이 8m나 되는 다리이니 오고 가는 사람들이 부딪치지 않을 만큼 넉넉한 규모를 가진 다리랍니다.

창덕궁에서 나랏일을 보고 있어야 할 정조대왕이 안양에는 무슨 일로 행차를 했던 것일까요? 수원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가는 길이었답니다. 정조대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사도세자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당파 간의 싸움에 휘말려 억울하게 뒤주 속으로 들어가 갇혔던 아버지의 모습과 그 안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지요. 아마 그 날의 무더웠던 여름 날씨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조대왕은 즉위한 후 아버지의 묘를 양주로부터 수원 화산(오늘날 화성)으로 옮겼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옮겨와 살 수 있는 터전으로서 화성을 건설하였답니다. 실학자 정약용에게 맡겨 설계한 화성의 공사는 영의정 채제공의 지휘하에 시작되어 예상보다 훨씬 빠른 2년7개월 만에 완료했답니다.

그 후 정조대왕은 그 먼 길을 마다않고 여러 차례 화성과 아버지의 능을 들렀답니다. 그 길을 갈 때 만안교를 건넜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언제나 이곳을 지났을까요? 처음에는 남태령고개를 넘은 후 과천, 인덕원을 지나 수원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런데 즉위 20년이 되던 해인 1795년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년이 겹쳐 수많은 사람들과 어머니까지 동행하여 화성으로 행차하게 되었답니다.

화성에서 성대한 잔치를 열고 백성들을 위한 행사도 가질 계획이었지요. 하지만 남태령 고갯길이 좁고 험하여 위험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적극 가담했던 김상로 형제의 묘가 근처에 있어 정조대왕의 마음이 편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수원으로 가는 다른 길을 찾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한강을 건넌 후 시흥과 안양을 거쳐 수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경기관찰사였던 서유방을 책임자로 하여 돌로 튼튼한 다리를 만들도록 했답니다.

3개월에 걸쳐 다리가 완성되자 정조는 ‘만년동안 백성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리’라는 뜻으로 ‘만안교’라는 이름을 친히 지어 주었지요. 왕이 행차할 때를 제외하곤 마을 주민들도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한 정조대왕의 마음을 담고 있는 이름이랍니다.

만안교를 건너 수원으로 향한 정조대왕의 여정은 효심을 품은 길이었답니다. 아버지의 능 근처 소나무에 있던 송충이를 입으로 씹었다는 일화와 능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능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며 궁궐로 돌아가는 여정을 늦추었다는 지지대 고개 사연에서도 왕의 효심을 엿볼 수 있지요.

가정의 달, 5월에 가족들과 함께 만안교를 걸어보며 정조대왕의 마음을 느껴보세요.

/김효중 부흥고 역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