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라면 간디와 타고르부터 연상할지 모르지만, 헤밍웨이의 수염과 머리에다가 치마를 즐겨 입는 사람이 나렌드라 모디(Modi) 인도 총리다. 작년 9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방문 때도 내내 치마 차림이었고 ‘간디의 집’에서 물레를 돌려 보일 때도 그랬다. 그런데 인도의 경제 부흥 등 그의 기세는 대단하다. 라가르드(Lagarde) 국제통화기금(IMF) 전무는 지난 3월 ‘인도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7.5%로 중국의 7.2%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녀는 인도의 활력, 그 근원으로 모디 정부의 개혁과 경기 활성화를 꼽았지만, 이를테면 ‘모디노믹스(Modinomics)’ 덕이다. 인구 12억5천만명 중 25세 미만이 약 반수로 매년 약 1천200만명의 새로운 노동력을 경제 활력에 끌어들이고 있는 거다. 브릭스(BRICS) 선도국인 중국에도 그는 당당하다. 작년 9월 뉴델리 정상회담 때는 기대에 못 미치는 중국의 투자계획과 모디의 완강한 국경 문제 제기로 공동성명도 내지 못했다.

그런 모디 총리가 어제 내한했다. 중국에선 ‘막적(莫迪)’이라 표기하지만, 발음은 ‘모디’고 한·중·일의 ‘印度’ 표기는 글자 뜻과는 상관없는 India의 음역(音譯)이다. India는 고대 그리스어 Indos에서 왔고 Indos는 페르시아가 인도를 지칭한 Hindu가 기원이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자국(自國)을 1949년 제헌의회가 채택한 국명인 ‘바라트(Bharat)’라고 부른다. 고대 인도의 아리안 족이 최초로 설립한 나라의 왕이 바라타(bharata)였고 ‘바라타 민족의 나라’를 뜻하는 말이 ‘바라타 바르샤(Varsa)’이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인연은 신라의 고승 혜초(慧超)가 5개 천축국(인도)에 갔던 게 시초 같지만, 그보다 더 오래다. 인도 공주 슈리라트나가 가야의 김수로 왕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6·25참전의 혈맹국이 인도다.

1913년 시성(詩聖) 타고르도 한국을 찬양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燈燭)의 하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중국+인도가 친디아(Chindia)라면 한국+인도는 코디아(Kodia)다. 모디 총리의 방한으로 양국의 경제 협력과 안보 등 우의가 더욱 두터워지기를 기대한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