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좌 조각 고려시대 추정
천년세월 주민의 버팀목


장삼과 가사를 차려입은 한 스님이 범종을 치려는 듯 서 있어요.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스님은 작은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서 있기만 하네요. 은은한 종소리를 기대하며 계속 기다려 보지만 스님은 당목(종을 칠 때 쓰는 긴 나무)을 두 손으로 든 채 여전히 앞에 선 사람들의 어깨너머만 지긋이 바라보고 있어요.

과연 종소리는 들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서 있는 이곳은 안양시 석수동 삼성산 자락에 위치한 마애종 앞이에요. 너른 바위 표면에 양으로 음으로 조각하여 만든 범종을 마애종이라고 한답니다. 서산마애삼존불상과 같은 마애불은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지만 마애종은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답니다.

마애종의 생김새를 함께 살펴볼까요? 잠깐, 여러분 눈앞에 있는 마애종은 평평한 바위 표면에 새긴 것이지만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상상해가며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먼저 도화지를 펼친 듯 너른 바위 면에 사각형의 얼개를 만들었네요. 그 안의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을 하나씩 세우고 그 위에 들보를 견고하게 걸쳐 얹었어요.

그 들보의 가운데에 긴 머리를 땋아내린 듯 묶은 굵직한 쇠줄에 범종을 매달아 놓았어요. 무거운 범종의 무게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종의 윗부분에는 용 모양으로 만든 고리(용뉴)가 쇠줄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 바로 옆에는 깊은 소리가 울려나도록 용통도 만들어 놓았어요.

실제 범종이었다면 깊고 은은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거예요. 범종의 몸통 윗부분에는 각각 9개의 유두를 새겨넣은 네모 모양의 유곽 2개로 장식했어요. 범종의 표면에는 종을 칠 때 때리는 부분을 표시해 두었답니다. 어디일까요? 둥근 모양의 꽃장식이 있는 부분이랍니다. 당좌라고 하지요.

마애종에도 3개의 당좌가 예쁘게 조각되어 있어요.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모습을 분석하여 고려시대에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답니다.

간혹 마애종만 이곳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이유를 묻기도 해요. 하지만 마애종은 외롭지 않았을 거예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안양사라는 절이 있기 때문이지요. 마애종을 처음 만들던 때는 더 가까운 거리에 안양사가 있었답니다. 바로 옆 김중업 박물관이 위치한 곳이지요.

신라시대에 세웠던 중초사를 고려 초에 안양사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2009년에는 중초사터에서 ‘안양사’라고 적힌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안양사의 위치를 밝혀내는 데 도움을 주었지요.

그렇다면 실제로 울릴 수도 없는 범종을 왜 바위에 새겼을까요? 절에서는 대체로 하루에 두세 번 범종을 친답니다. 법고(북), 운판(구름 모양의 금속판), 목어(물고기 모양의 나무)와 함께 쳐서 세상의 모든 생물들과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함이라고 해요.

진짜 종소리는 여운만 남기고 어느새 사라지고 말지만 마애종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간절히 듣길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울렸을 거예요. 여러분 앞에 보이는 마애종을 잠시 동안 바라보세요.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지 않나요? 이렇게 석수동 마애종은 약 1천년의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안양지역 주민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입니다.

/김효중 부흥고 역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