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지부지 넘어 가려고 했던 홍준표 지사의 ‘국회대책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엔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 때문이다. ‘입법 로비’ 사건으로 기소된 그는 법정에서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국회대책비’ 유용을 실토했다. 성완종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해명하면서 홍준표 경남지사가 “2008년 원내대표 시절 매달 국회대책비 4천만~5천만원의 일부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밝혔을 때 야당 의원들이 의외로 조용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세비 말고 매달 1천700만원을 활동비 명목으로 받는다. 영수증 처리가 필요없는 ‘국회대책비’다. 상임위원장은 보통 3선 이상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서로 맡으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좋은 자리다. 신 의원은 환경노동위원장 당시 활동비로 매월 900만~1천만원 정도를 쓰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아들 유학비로도 사용했다. 국회 고위직 활동비의 상당 부분이 개인적으로 유용되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2013년 1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청문회에 섰을 때 헌법재판관 시절 특정업무 경비를 카드대금 결제 등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그때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 재판관을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이고 결국 그를 낙마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공금횡령으로 고발까지 했다. 그는 졸지에 파렴치범이 됐다. 그런데 알고보니 국회의원들도 똑같은 돈을 사적으로 마구 유용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전모를 알게 된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크다.

의원들은 이런 대책비를 ‘눈먼 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런 눈먼 돈이 연간 84억원에 이른다. 국회대책비를 개인적으로 유용하면 그것은 공금을 횡령한 범죄행위다. 이들은 이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공적 활동비를 주머니 쌈짓돈으로 알고 ‘곶감 빼먹 듯’ 꺼내 썼다. 이 돈을 쓰면서 과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이번에 드러난 ‘국회대책비’를 흐지부지 끝내서는 안된다. 사용 내용을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들이 못하겠다고 하면, 공금횡령으로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