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이야 하늘에 달렸다. 메르스 따위 전염병에 걸려 죽을까 두려운가. 미세먼지도 없는데 마스크 따윈 벗어던지고 냉큼 가 볼 데가 있다. 부천 백만 송이 장미공원이다. 거기 새빨간 장미의 강렬한 향기에 아뜩하게 취해보는 건 어떨까. 어느 듀엣의 노래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나 네메시스(Nemesis)의 ‘베르사유의 장미’―‘바람 한 점 없어도 향기로운 꽃/ 가시 돋쳐 피어나도 아름다운 꽃…’이라도 흥얼거리며…. 일본 가수 스즈키 히로코(鈴木宏子)의 노래 ‘베르사유의 장미’도 있다. ‘와다시와 바라노 사다메니 우마레타/ 하나야카니 하게시쿠 이키로토 우마레타…(나는 장미의 운명으로 태어났다/ 화려하고 맹렬하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아니면 그리스신화의 미청년 아도니스(Adonis)부터 상상해 본다든지…. 그가 사냥에서 멧돼지에 받혀 죽자 그의 피에서는 아네모네가, 그를 사랑한 여신 아프로디테의 눈에서는 장미가 피어났다고 하지 않던가!

오페라 ‘여름의 마지막 장미’를 기억해도 좋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무어(Moore)의 시집 ‘아일랜드 가곡집(Irish melodies)’에 수록된 민요 ‘여름의 마지막 장미’를 가곡화한 그 오페라 말이다. 하지만 그 오페라는 ‘마지막 장미’ 그 말이 슬프다. 여름 막바지, 가을 문턱에 단 한 송이만 남아 쓸쓸해 보이는 장미에 애정을 퍼부은 노래가 ‘마지막 장미’다. 그러니까 ‘여름의 마지막 장미’ 한 송이 고고히 남기 전에 백만 송이 장미공원으로 달려가 깡그리 사열하듯 진한 향기에 취해 보는 게 어떨까. 로마자를 쓰는 대부분의 서양 장미는 거의가 rose(스페인은 rosal)고 러시아도 ‘로자’로 비슷하지만 일본에선 장미를 한자음 ‘쇼비’보다 ‘바라’라고 부른다. 중국에선 또 ‘메이꾸이(매괴:매괴)’라고 한다. 우리말에선 해당화가 매괴지만.

세상은 삭막하고 살벌하고 불안하고 추악하고도 메스껍다. 세상만사 접어두고 밀쳐둔 채 백만 송이 장미향기 가득한 장미축제 공원에나 가 보라고 재촉하고 싶다. 그래서 정신이 아찔하고 아뜩하도록 향기에 취해 보라고. 그리고 연인을 향해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가시까지도 쏙 닮았네요…’를 중얼거려 본다든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