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YT “비공개로 불신 자초”
행정부 감독 총리부재 상황
만연된 관료주의 폐해 부각
정부 비난은 혼란만 부채질
보건당국 질병 극복 힘써야
메르스 바이러스(MERS-CoV) 감염 확진 판정이 계속 늘고 있다. 6월 7일 오전 메르스 검사결과 14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사망자도 포함됐다. 그러자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당국은 감염자가 거친 병원을 밝혔다. 그동안 준비 소홀을 이유로 병원을 밝히지 못하다가 서울 삼성병원 등의 2차 감염자가 늘자 이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35번째 의사 환자가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뒤 메르스 증상에도 불구하고 1천565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인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사자인 의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받아쳤다. 이미 성남시는 메르스 환자 신상정보를 SNS로 공개하고 있었다. 개인이 ‘메르스 확산 지도’를 만드는가 하면 어떤 언론사는 정부보다 먼저 앞장서서 메르스 확진자가 거쳐 간 병원과 환자정보까지 인터넷에 공개했다. 왜 이렇게 혼란스러워졌을까? 이 혼돈 (Chaos)은 행정부를 책임져야 하는 총리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에 만연된 일상적 관료주의가 메르스 위기를 계기로 드러난 결과가 아닌지 우려스럽다.
관료주의 (官僚主義, bureaucratism)는 관료제 국가의 행정기관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집단의식으로 흔히 비밀주의·형식주의·번문욕례(繁文縟禮)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비밀주의는 관료/공무원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비밀 공유대상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관료/공무원들은 흔히 공익을 이유로 비밀주의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당국은 지금까지 병원 운영의 혼란과 준비부족을 이유로 관료적 비밀주의 행태를 보여왔다. 이에 대해 이미 뉴욕타임즈는 “한국에 공포감이 번지고 있으며, 현 정부는 질병과 관련된 정보를 대중에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병원 운영을 위한 공익보다 국내외적 불신/불안 해소가 더 중요해진 상황까지 가서야 보건 당국은 비밀의 문을 열었다. 그동안 국민불신은 극에 달했다. 다음으로 관료적 형식주의가 문제다.
이는 관료/공무원들이 실질적인 내용이나 현실보다 책임회피를 목적으로 법령과 규정의 형식/절차 등을 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메르스 확진자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시스템 운영상 혼란을 이유로 보건 당국은 관계 법령을 읊조리며 감염자 관련 병원을 밝히지 않았다.
그 결과 평택 성모 병원을 중심으로 감염자가 확산된 데 이어 서울 삼성병원에서 14명의 감염 환자가 메르스 감염으로 확진됐다. 마지막 관료주의적 병리현상은 번문욕례다. 이는 규칙이 너무 번잡해 비능률적인 것을 뜻한다. 이 경우 관료/공무원들은 이를 쉽고 간소하게 하는 대신 규칙의 명확성과 절차의 공정성을 주장하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시스템에 익숙한 스스로를 과시한다. 현재 감기와 유사한 메르스 증세에 대한 확진 판결까지의 과정은 길고 번잡하다. 우선 의심환자는 14일의 잠복기를 포함해 꽤 긴 시간 동안 자가격리된다. 그 기간에 환자는 스스로 메르스인지 여부에 두려워하며 불안해한다. 가족과 격리된 상황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잦은 세탁과 청소, 생활용품 분리사용 등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환자들은 자가격리 시 스스로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골프를 치고 친지도 방문한 것이다. 이제라도 보건 당국은 이 불편한 과정을 어떤 식으로든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감염 의심 환자가 감염 상황을 두려움과 공포심 대신 보건 당국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질병 극복의 의지를 북돋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에 대해 혹자는 “과거 참여정부가 더 낫다느니” “이 정부는 잘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느니”하며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든 정치적 이익을 기대하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국가 위기 상황을 악용하는 패륜적 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비록 중대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인 총리가 없어 안타깝지만 보건 당국과 관료/공무원/의사들은 온 힘을 다해 메르스 감염 확산 사태를 막아주기 바란다. 꼭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