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구든지 분노할 수 있다.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분노를 조절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한 것처럼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대상에, 올바른 정도와 방법으로, 적당한 시간 동안 분노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분노로 가득 차 있고, 메르스 확산으로 극에 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 분노조절장애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2009년 이후 불과 5년 사이에 33.5% 늘었다. 보육교사의 아동폭력, 잇단 총기사건, 땅콩회항, 층간소음 다툼, 주차시비 폭행 등 한순간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분노조절장애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여성, 노인 등 사회 약자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묻지마 범죄’ 대책이 시급하다.
분노조절장애가 급증하는 데는 사회 환경적인 요인도 있다. 우리는 지난 한 세대 고도성장을 해왔으나 2000년 이후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고도성장에 길든 우리는 저성장에 더욱 짜증이 나고 화나는지도 모른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욱병 범죄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자기중심적인 성장 환경을 꼽는다.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크면서 남을 배려하는 학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분노조절 훈련을 해야 성인이 돼서도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
누군가 우리를 화나게 할 때 ‘저 사람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속 분노가 약간은 누그러진다. 그러나 실제로 분노가 끓어오르면 처지를 바꿔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분노한 상태에서는 오로지 자기 생각만이 전부이고 최선이며, 상대와 나를 전체 중 일부분으로 보지 않고 내가 전체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분노는 나쁘고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감정이다. 옳지 못한 일을 겪을 때 용기 내 말 할 때도 분노가 필요하다. 단지 그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용납되는 한계 안에서 자신과 타인을 상처 내지 않도록 인내하며 적절하게 표현돼야 한다. 화병과 욱병 사이에서 세련되게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은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다.
/정종민 여주교육지원청 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