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대며 제대로 대처도 못하는 정부 ‘한심’
국민안전 잘 지키면 국가이미지 상승 당연한데…
효율적 대책으로 안심 시키는 모습 보고 싶을뿐

캘리포니아 주립대 의대에서 생리학 교수로 재직하는 제라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 총, 균, 쇠 라는 책이 있다. 명저로 꼽혀 퓰리처상을 받았고 베스트 셀러에도 올랐다. 이 책에서 제라드 교수는 세균의 진화와 전파경로에 대한 흥미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세균(바이러스)은 단순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영리한 바이러스는 번식을 위해 숙주로 사용하는 매개체를 죽이기보다는 적당히 아프게 하면서 자가 증식을 통해 인간의 면역체계에 대응해 가는 방식으로 생존능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제라드는 인류가 짐승들을 가축화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가축이 가진 질병들이 인간에게 옮겨지고 세균이 변이되면서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고 있고 확산속도도 빨라진다고 지적했다. 특정 지역의 풍토병이 세계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세계화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병이 갑자기 퍼지면서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4세기에 유럽을 침략한 몽골군이 중국 운남성의 풍토병인 흑사병을 유럽에 퍼트려 당시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중앙아메리카의 아즈텍 제국이나 남미 잉카제국도 총과 말로 대표되는 군대의 침입에 더해 신대륙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천연두를 스페인 인들이 퍼트려 수백만의 인디언을 숨지게 한 것이 멸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정 지역에서 발병해 그 지역주민들에게만 감염되는 풍토병이라고 무시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 전체가 하나로 묶이면서 풍토병이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로 번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풍토병 중에서 글로벌화 되면서 악명을 떨친 에볼라와 에이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도 따지고 보면 중동지역의 풍토병이다. 사막도 아니고 낙타도 기르지 않는 우리가 메르스에 떨게 된 건 풍토병에 무지한 데다 대처까지 서투른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메르스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처는 무능하다 못해 한심하다. 허둥대기만 하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게 첨단의료기술을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인지 헷갈린다.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몰라 SNS를 타고 번지는 소문들을 괴담이라며 단속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여론은 싸늘했다. 괴담을 단속하려 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여론은 백번 옳다. 단속에 쏟는 노력을 메르스 퇴치에 기울여 질병을 퇴치하면 괴담은 자연히 사라진다는 세간의 반응은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분별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질병이 확산되고 있으니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국회의 추궁에 국가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답변은 일의 선후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중요한 건 국가의 이미지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고 그게 잘 지켜지면 국가 이미지는 자연스레 좋아진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메르스에 헤매는 정부를 보면 지난해의 세월호 참사에서 도대체 뭘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2002년에 유행했던 사스에선 또 무엇을 배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빗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뒤늦은 대처를 비꼬고 있긴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를 보면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라고 권하고 싶다. 더 이상 똑같은 실수로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양간은 철저하게 고쳐야 한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국민들을 안심하도록 다독이며 효율적인 대책을 갖고 믿음직하게 끌고 가는 그런 정부를 보고 싶다. 그게 이뤄질지는 의문이지만….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