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9년(세종 21년) 음력 4월, 가뭄이 지속되자 세종은 고민에 빠졌다. 여러번 기우제를 지냈지만 아무런 기별도 없었다. 하늘을 감동시켜서라도 비를 오게 하고 싶었던 세종은 이런 기발한 교지를 내린다. 그날(24일)을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적었다. “지금 농사일이 가장 긴요한 때를 당하여 여러 달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하늘이 감동(感動)하여 가뭄을 구(救)하기를 바라서, 마땅히 늙은이를 공경하는 예를 또한 거행하여야 하겠다. 그 늙은 남녀에게 벼슬을 제수하되, 일체 을묘년 6월 21일 교지(敎旨)에 의하여, 양가(良家) 90세 이상의 백신(白身)에게는 8품을 주고, 원직(元職)이 9품 이상에게는 각각 한 급(級)을 올려 주며, 1백 살 이상의 백신에게는 원직이 8품인 자는 6품을 주고, 원직이 7품 이상은 각각 한 급씩 뛰어 올려 주며, 모두 3품으로 한정하여서 그만두게 하라.” 이 때문이었을까. 열흘 후인 음력 5월 7일부터 3일간 계속 비가 내렸다. 가뭄의 해결이 인력으로 안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알고 있었던 세종이 측우기를 만든 건 나름대로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우제는 하지(夏至)가 지나도 비가 오지 않아 모내기에 영향을 미칠때 지내는 걸 말한다. 모내기 이후 벼가 어느정도 자랐을때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기우제가 아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아도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기설제(祈雪祭)라 하였다. 반대로 장마로 홍수가 나면 비를 그쳐 달라는 기청제(祈晴祭)도 지냈다. 이런 제사가 효과를 보면 보답한다는 뜻에서 보사제(報謝祭)를 지낸 일도 있다. ‘기우제등록(祈雨祭謄錄 )’은 1636년(인조 14)부터 1889년(고종 26)까지 기우제·기청제·기설제는 물론 수표(水標) 및 측우기로 관측한 기록을 모아놓은 책이다. 조선의 왕들이 가뭄 장마 폭설 등 자연재해에 얼마나 민감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조선시대에 홍수와 가뭄, 특히 이상기후는 왕권 유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50년만의 가뭄으로 산하(山河)도 민심(民心)도 타 들어간다. 10여일 내로 큰 비가 오지 않으면 수도권도 큰 가뭄 사태를 겪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가뭄에 메르스까지 겹쳐 정말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다. 기우제를 지내서라도 비를 빌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