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수원 경계… 효심 추모 ‘지지대碑’도
지형적으로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산줄기를 넘어가는 고갯길도 많아요. ‘령(嶺)’, ‘현(峴)’, ‘치(峙)’, 그리고 우리말 ‘재’ 등으로 끝나는 지명들은 고갯길임을 나타낸답니다. 고갯길들은 근처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저마다의 사연을 하나씩은 품고 있지요.
오늘은 여러분들을 경기도에 있는 어떤 고갯길로 안내할거예요. 예상하는 것처럼 힘든 길은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오세요.
우리가 오를 고갯길은 안양시에서 의왕시를 거쳐 수원시로 넘어가는 ‘지지대 고갯길’이랍니다. 광교산 서쪽의 야트막한 산줄기를 넘어가는 고갯길이지요. 자 그럼 고갯마루까지 걸어가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눠요.
오늘날 지지대 고갯길은 좁고 험한 산길이 아니에요. 왕복 13개 차선의 도로가 난 큰 길이랍니다. 골사그내 마을 앞에서 노선버스를 내리면 완만하게 경사진 고갯길을 차들이 쌩쌩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수원시로 가는 차들이지요. 그 길 옆 인도를 따라 약 900m정도 걸어가면 고갯마루에 도착한답니다.
의왕시와 수원시의 경계선이 그어진 곳이지요. 그 오른편 계단 위에는 이 고갯길의 사연을 담고 있는 ‘지지대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가 세워져 있답니다.
‘지지대’라는 이름을 통해 그 사연이 무엇인지 상상해 볼 수 있어요. ‘더디다’라는 뜻을 가진 ‘지(遲)’ 자를 두 번이나 붙인 그 이름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요?
원래 이 고개의 이름은 사근현이었어요. 그런데 18세기 말에 미륵현으로 바뀌었다가 어느 왕에 얽힌 사연 때문에 지지대 고개로 바꿔 부르게 되었지요. 그 왕은 바로 정조랍니다.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묘를 화성의 현륭원으로 옮긴 후 자주 들렀답니다.
그 때 이 고갯마루를 넘었던 것이지요.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해 효성이 지극했답니다. 정조는 이곳을 넘어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아버지의 능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늘 아쉬워했답니다. 그래서 고갯마루를 차마 떠나지 못하고 한양으로 향하는 어가를 잠시만이라도 멈추도록 지시했답니다.
현륭원으로 갈 때 정조의 마음은 쌩쌩 달려 고개를 넘는 저 차들의 운전자들과 같은 마음이었겠지만 한양으로 되돌아 갈 때는 그 반대였던 것이지요.
“더디게 가자, 더디게!”
어가 행렬을 멈춰 세운 정조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현륭원 쪽을 뒤돌아보던 정조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나요? 이러한 사연 때문에 ‘더디다’라는 뜻을 가진 ‘지(遲)’자를 두 번이나 넣어 고개 이름을 지었답니다.
고갯마루에 세운 지지대비는 정조의 아들 왕인 순조 때 정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화성 어사 신 현의 건의로 세워져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답니다.
고갯마루를 지나 내려가면 길 건너 동쪽에 정조의 동상과 효행기념관이 있는 효행공원이 있답니다. 그 곳을 둘러보면서 지지대 고개를 넘던 정조의 마음을 되새겨 보세요.
/김효중 안양 부흥고 역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