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18일 내놓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은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은산(은행-산업자본) 분리 규제를 인터넷은행에 대해서는 대폭 완화해 산업자본인 비금융주력자의 지분한도를 50%까지 허용하고, 최저자본금도 시중은행의 절반인 500억원으로 낮췄으며 영업범위도 일반은행과 차등을 주지 않기로 해서다.

이는 대부분 그간 논의되거나 예상됐던 규제완화 수준의 최대치로 여겨진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3년 만에 국내 금융시장에 신규 은행 설립을 기대하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라고 의미를 평가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는 물론이고 웬만한 알짜 중소기업이라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할 수 있을 정도로 문턱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향후 법 개정을 논의할 국회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 비금융주력자 지분한도 50%로 파격적 완화

도입방안의 핵심 쟁점은 비(非)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지분 보유한도였다.

비금융회사의 자본총액이 전체 자본의 25% 이상이거나 비금융회사의 자산합계가 2조원 이상에 해당하는 비금융주력자는 은행 지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재벌의 자본집중과 은행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구실하는 이른바 은산분리 규제다.

이 지분한도 규제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50%로 완화한다는 게 정부안이다.

논의과정에서 지분규제를 아예 없애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금융위는 전했다.

금융위는 50%에 대해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수준까지 완화해 다른 주주들의 견제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이라며 '50%까지만 완화'라는 표현을 썼다.

정관변경이나 영업양도, 감자 등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위한 주주총회 결의를 위해선 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50%로 완화해도 최대주주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33.3%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점에 비춰 파격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소지는 있다.

물론 은산분리 완화에 따른 부작용 방지 장치도 마련했다.

자산총액이 5조원이 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은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지난 1일 현재 대기업집단 61곳이며 그 계열사는 총 1천684개다. 이 가운데 미래에셋과 교보생명 그룹은 은산분리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대주주와 이해상충을 막기 위해 대주주와의 거래 규제도 강화했다.

최저자본금도 시중은행(1천억원)의 절반이자 지방은행(250억원)의 갑절인 500억원으로 정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진입 활성화에 대한 필요성과 영업점포가 다는 특수성이 고려됐다.

◇ 영업범위·건전성 규제도 일반은행과 동일

영업범위도 일부에서는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모두 풀었다.

일반은행이 하는 고유업무(예적금 수입, 대출, 내외국환), 겸영업무(신용카드, 방카슈랑스, 파생상품 매매중개), 부수업무(채무보증, 어음인수, 보호예수, 수납 및 지급대행)를 모두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향후 시스템 리스크 방지나 건전성 유지 차원에서 업무범위 제한이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인가 시 부관이나 하위법령을 통해 제한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신용카드업 허용이다. 신용카드업을 겸영하려면 30개 이상의 점포, 300명 이상의 임직원 요건이 필요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선 이런 요건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나 대손충당금 적립 같은 건전성 규제와 설명·공시의무, 광고제한 등 영업행위 규제도 원칙적으로 일반은행과 같다.

다만, 설립 초기의 부담을 고려해 일정기간 예외를 인정해주다가 일반은행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할 때 초기에는 바젤Ⅰ기준을, 나중에 일반은행처럼 바젤Ⅲ를 적용하고, 유동성규제인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도 초기에는 특수은행 수준의 규제비율(60%)을 우선 적용하다가 매년 5%포인트씩 높인다.

◇ 1단계로 연내 1~2곳 예비인가…2단계 인가 때 신청 많을 듯

인가심사기준은 은행업 기준과 같지만, 인터넷전문이라는 취지에 맞게 중점 고려사항을 나열했다. 사업계획의 혁신성, 주주구성과 사업모델의 안정성, 금융소비자 편익 증대, 국내 금융산업 발전과 경쟁력 기여도, 해외진출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는 새로운 서비스 창출이 가능한지, 충분한 출자능력과 사회적 신용을 갖춘 구주로 구성됐는지, 금융서비스를 더 낮은 비용과 조건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는지 등이 평가 대상이다.

이런 기준들은 다음달 인가매뉴얼에 담아 공개한다.

인가는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외부평가위원회의 평가결과를 토대로 금융감독원의 심의를 거쳐 금융위가 결정하는 단계를 거친다. 신설 인가인 점에 비춰 여러 신청자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한 번에 신청을 모아서 받은 뒤 일괄심사로 진행한다.

이미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이 관심을 보였고 경기도는 아이뱅크(I-Bank) 설립 의사를 밝힌 바 있다. 2금융권에서도 관심을 나타낸 바 있어 신청자들이 난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앞서 연내에 1단계로 시범인가도 한다. 현행 은산분리 규제 체제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운영할 자격이 있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연내에 1~2곳에 예비인가를 내준다는 것이다. 일종의 시범사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굳이 1~2단계로 나눌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도 있다.

2단계 인가가 내년 하반기에 이뤄진다면 1단계 사업자의 시장 안착 여부를 확인하기에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고, 시범사업이라는 목적이 희석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1단계에 진입한 사업자가 시장선점 혜택를 볼 수도 있다.

이와 맞물려 정부가 1단계 인가를 은행법 개정을 성사시키려는 동력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단계 인가에 참여할 사업자의 업역에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논란거리다. 금융위 도규상 국장은 "은행은 소망스럽지(바라지) 않는다"는 말로 기존 은행들이 주력 사업자로 참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컨소시엄이나 제2금융권에서는 (참여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정부안대로 규제를 완화하려면 난관도 예상된다.

은행법을 비롯해 법령 개정작업이 필요한데, 은산분리 규제라는 민감한 이슈를 놓고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8년에도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당시에는 은산분리 규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최저자본금요건을 완화하고 업무범위도 최소화하는 선이었는데도 은행 건전성의 추가 악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12월부터 적용되는 비대면 실명확인을 놓고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금융위는 금융소비자의 신분증 사본의 온라인 제출, 영상통화, 현금카드 전달시 신분 확인, 기존 계좌 이용 등을 비대면 실명 확인 방안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런 비대면 실명 확인 방안이 영업점을 방문하는 것보다 오히려 번거로울 수 있고, 금융사기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