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색채가 가미된 모든 예술은 선에 천착한다. 한국 무용은 발끝과 손끝으로 표현되는 선의 미학에 충실하고, 한국 동양화는 붓과 먹을 통해 휘젓듯 그려내는 선의 여백을 일품으로 친다.

현대미술이지만, 한글에서 영감을 받아 선 긋기로 작품을 만들어 낸 실험적인 설치미술전이 열린다. 설치작가 강은혜가 오는 29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 ‘Abstract Code’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이번 작품은 한글의 패턴 작업과 스트링 설치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구조를 지녔다는 한글의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요소에 집중했다.

조형물로써 한글이 지닌 순수한 잠재력을 끄집어 내기 위해 한글의 ‘선’과 건축적 공간을 접목시켰다. 장지 위에 먹 드로잉을 통해 촘촘하게 선을 잇고 긋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공간적 의미의 ‘면’을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 대해 작가는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형태의 기본은 직선이다. 점에서 점을 향해 가는 선들은 공간적 이동을 상징하고, 어떤 지점에서는 방향을 틀어 과거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도 한다”며 “이 과정을 시각적으로 추론해 내며 느슨하거나 팽팽한 긴장감과, 그 긴장감을 주체하지 못해 끊어지기도 하는 인간관계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드로잉 작업 외에도 그는 실제 전시 공간에 실을 잇는 스트링 설치작품을 전시했는데, 실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면서도 실들이 수도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묘사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에 대해 ‘수행과 같은 명상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실이 끊어질 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실을 잇는 행위를 하면서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며 “하나의 선 긋기로 채워져 가는 면은 결국 나에게 ‘채움’ 이자 동시에 ‘비움’이다”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강은혜는 그동안 무채색의 선을 통해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설치미술 작업을 꾸준히 해온 젊은 작가다. 뉴욕과 버몬트 레지던시 활동과 더불어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글문화큰잔치의 전시작가로 선정돼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 가평 남송미술관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