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주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단지 '어처구니 없다'는 말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끔찍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넋을 잃고 오열했고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차라리 천재(天災)였더라면' 하고 가슴을 쳤다. 구조대가 유독가스에 막혀 속수무책 발을 구르는 사이 생때같은 목숨들은 암흑 속에서 '살려달라'는 절규만 쏟아내다 숨져갔다. 사고원인은 신병을 비관해온 한 50대 남자의 '우발적' 방화.

■화재발생=진천을 떠나 안심 방향으로 운행 중이던 전동차가 대구 중앙로역 구내에 멈춰섰을 때 감색 운동복 차림의 김씨가 인화물질이 든 플라스틱 병에 불을 붙였다. 승객 석모(35·여)씨는 “전동차 문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김씨가 병 뚜껑을 열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고 해 주변에서 제지했으나 불이 붙었다”고 말했다. 불은 좌석과 지붕으로 옮겨붙으면서 삽시간에 다른 객차로 번졌고, 전기공급이 끊기면서 역 구내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피해=불이 난 하행선 전동차의 승객 상당수가 열린 문으로 대피했지만 반대편에서 역에 진입한 상행선 차량의 승객들은 정전에 문까지 닫힌 상태여서 희생이 더 컸다. 화재 직후 7~8명 수준으로 알려졌던 사망자는 7시간 후 상행선 3호차와 4호 차량 바닥에 엉켜있는 수십구씩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순식간에 최소한' 130여명으로 늘었다. 부상자 140여명 중에도 중태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두 전동차의 탑승 승객은 43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현장=지하 3층의 역 구내는 소방차가 뿜어낸 물로 물바다를 이루고 천장 일부가 무너져 내려 화재 당시의 처참함을 가늠케 했다. 불에 탄 전동차 2대는 유리창이 모두 녹아내린 채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다. 유독가스가 환풍구 등을 통해 인근 지하상가 등으로 번지면서 중앙지하상가 점포 251개는 모두 문을 닫았다. 대구 도심의 지상 교통도 완전마비됐고, 시민들이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과 병원으로 몰려 들어 일대 혼잡을 빚었다.

■진화 및 구조=소방관 등 1천300여명의 인력과 장비가 동원됐지만 현장 진입이 어려워 오후 1시30분께에야 진화됐고 이후에도 유독가스가 계속 분출, 구조대 투입이 지연됐다. 대구시와 지하철본부, 소방본부 등은 현장에 지휘본부를 설치,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민회관에는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의 합동 대책실이 설치됐다.

■경찰수사=경찰은 지체장애(2급)에 신체마비 증세를 보여온 김씨가 신병을 비관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있다. 김씨는 99년부터 우울증 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