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8시42분. 36홀 규모인 용인시 모 골프장의 첫 홀에서 티샷을 준비하던 김영식(45·사업)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 주말이면 서너팀씩 밀려있어야 할 대기석이 이날 따라 의외로 한산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시작해 3홀째를 지나면서 보니 앞팀은 3명만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김씨의 의문은 캐디인 최모(32·여)씨의 설명으로 풀렸다. “총리실에서 암행감찰에 나섰대요. 그래서 공직자들이 예약을 취소하거나 접대받아야 할 당사자가 나오지 않아 3명씩 하는 경우가 많아요.”

비가 내리던 22일 오전 11시. 회원권 가격이 비싸기로 소문난 화성의 모 골프장이 여느 주말과는 달리 너무 한가하다.

궂은 날씨인데다 암행감찰 소문까지 겹치면서 평일 수준에도 못미치는 60여팀만이 라운딩을 했기 때문이다.

이 골프장의 예약 담당자는 “20일부터 갑자기 예약 취소가 밀려들어 140팀이 나가야 하는데 절반도 못 채웠다”고 말했다. 비가 오더라도 최소한 100여팀은 라운딩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게 이 담당자의 설명이다.

골프장에 찬바람이 분다. 주말이면 빈자리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던 부킹에도 여유가 생겼다. 정부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로 우울한 국민 정서를 헤아려 공직자들의 골프자제를 당부하는 공문을 내려보낸데다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공직기강을 추스르기위한 총리실의 암행감찰 소식까지 겹쳐 중앙과 지방의 고위공직자들이 대거 예약을 취소하고 있다.

22일이 공무원들의 휴무일인 매월 넷째주 토요일이어서 골프장들은 지난 10일부터 밀려드는 부킹청탁으로 심한 몸살을 앓아야했다.

경부고속도로와 가까워 서울거주 공무원들의 희망 1순위인 용인 모 골프장의 경우 각종 연고와 백을 동원하는 공직자들의 등쌀에 담당자들이 자리를 비우기까지 했다. 그러던 것이 하루아침에 분위기가 바뀌면서 자리조차 채우지 못하게 된 것.

이같은 사정은 일요일인 23일도 마찬가지. 예약취소는 많지 않았지만 4명이 한팀인데도 3명씩 라운딩을 하는 팀들이 유난히 많았다. 하루에 142팀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용인의 모 골프장은 120여개 팀만 운동을 했다.

그나마도 이빨이 빠진듯 3명씩 라운딩을 하는 팀이 30여 팀이나 됐다. 이같은 사정은 도내 대부분의 골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22일에는 50%이상, 23일에도 20% 정도의 부킹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처럼 여유있게 운동을 했다는 김씨는 “공직자들이 운동하는거야 막을 수 없지만 민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새정부의 방침이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한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