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1번 타자가 호타 준족(好打 駿足)이어야 한다는 편견은 2004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1번 타자에 느림보 제러미 지암비가 기용되면서 깨졌다. 오클랜드 구단주는 ‘머니볼’로 유명한 빌리 빈. 그때도 그는 ‘출루율’의 중요성을 입에 달고 다녔다. 지암비의 통산 타율은 2할6푼3리였지만 출루율은 3할7푼7리였다. 빌리 빈은 1번 타자는 무조건 출루해야 한다고 봤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신시네티 레즈에서 뛰던 추신수에게 7년간 1억3천만 달러를 투자한 것은 그의 출루율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시네티 시절, 추의 출루율은 무려 4할2푼3리로 메이저리그 통틀어 2위였다.

2번 타자의 미덕은 작전 수행능력이다. 1번 타자가 출루하면 그를 2루로 보내는 작전에 능해야 한다. 발이 빠르면 금상첨화다. 1·2번 타자를 테이블세터( Table Setter)라고 부른다. 밥상을 차리듯 1, 2번 타자가 출루해 득점 찬스를 만들어 놓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3, 4번은 그것을 깨끗하게 먹어 치워야 한다. 클린업(cleanup)타자가 그래서 나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최고 타자를 4번이 아닌 3번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확성이 뛰어난 교타자이면서 홈런보다는 타율이 높은 선수가 주로 3번을 맡는다. 테이블세터가 출루하지 못할 때는 본인이 출루해 4번에게 득점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4번은 홈런타자가 맡고 5번은 타율보다 타점 생산 능력이 있는 찬스에 강한 타자가 맞는 게 보통이다.

프로야구 꼴찌 수원 kt 위즈가 크게 달라졌다. 지난 6월4일 댄 블랙이 4번 타자로 가세, 3번 마르테와 함께 ‘마블 듀오’를 이루면서부터다. 6월11일 롯데와의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으며 창단 첫 시리즈 ‘스윕(sweep)’도 기록했다. kt를 만나 승수를 채우려던 타 구단들은 이제 마블 듀오 경계령까지 내렸다. 베이브 루스-루 게릭 듀오가 양키즈의 독주를 주도했고,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오 사다하루(王正治))-하리모토 이사오(張勳)의 ‘OH포’ 가 76·77년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듯, 마블 듀오는 kt팬들을 위해 지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덕분에 kt 팬들은 야구장 갈 맛도 생겼다. 마블 만화의 주인공들처럼 , 마블 듀오로 인해 kt 위즈는 이제 더 이상 만만한 팀이 아니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