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섬인 나가사키 하시마섬 혹독한 ‘강제 노역장’
일본, 강제노동 대신 ‘일을 시켰다’ 애매한 표현
‘전쟁피해 강조의 수단 활용’ 日국익에 부합 안돼

결국 하시마를 비롯한 일본 근대산업시설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본이 등재 신청한 이른바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규슈와 야마구치지역 8개현 11개 시에 소재한 총 23개 시설이다. 이들 시설 중 7개 시설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시설로, 약 5만7천9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했던 곳이다. 특히 나가사키의 하시마(端島) 섬은 ‘지옥섬’으로 불릴 정도로 혹독한 강제 노역의 현장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7개 시설에서의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방법을 놓고 논쟁하였으나 합의를 이뤄 등재안이 통과됐다.

등재결정 직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과거 1940년대에 한국인 등 자기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한(forced to work)’ 사실이 있었음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를 중심으로 한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를 계기로 ‘한일양국관계가 선순환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런데 일본 외무상은 해당 문구를 ‘강제 노역’이 아니라 ‘노동을 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강제노동(forced labour)’이라는 명백한 개념어 대신 ‘일을 시켰다’(forced to work)라는 애매한 표현을 허용한 것과, 합의내용을 주석(註釋)형식으로 삽입키로 한 것도 실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은 해당 유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다.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이라고 자랑하는 근대 산업시설은 러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등의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상당수가 조선인을 비롯한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에 의해 가동되었던 시설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물론 아우슈비츠수용소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렇지만 히틀러와 나치의 야수적인 만행을 밝히고, 유태인이 당했던 수난을 기억하기 위한 반성과 교훈으로 삼기 위해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만약 일본이 향후 강제노역의 역사를 충실하게 밝히라는 유네스코의 권장사항을 제대로 이행한다면 보편적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히로시마 원폭 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당시, 핵폭탄의 가공할 위력과 핵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원폭돔을 통해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입은 전쟁의 피해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심지어는 국가주의와 재무장론을 선전하는 도구로까지 활용한다는 점이다. 보편적 가치를 국가주의적 가치로 변질 왜곡시킨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왜곡이 결코 일본의 진정한 국가적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야 한다.

‘지옥의 섬’이 포함된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등재 논란을 계기로 국내의 근대역사유산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일본인들이 남긴 식민 유산과 전쟁 유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주도에 남긴 일본 진지들은 확인된 곳만 450곳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전쟁 유적지는 치욕의 유산이 아니라 침략전쟁 역사에 대한 교육장소로 보존 활용해야 한다. 일본인들의 조선진출 교두보였던 인천의 근대역사유산도 엄정한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인천의 경우 부평미군기지에 남아 있는 인천육군조병창의 지하시설물과 관련 유적에 대한 조사와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각종 개항기 문화유적이 식민지기에 수행한 기능들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 개항기 유산의 근대적 성격만 강조하다가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는 오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