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 ‘그리스 호’가 한심하다. 엔진의 ‘그리스(grease)’가 말라붙어 유럽대륙이 떠나갈 듯 굉음과 함께 파열한 채 표류 중이라니! SOS 신호와 함께 깃발을 마구 흔들어도 멀찍이 맴도는 EU 유로 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라는 거대 예인선은 좀처럼 다가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3차 구제금융안을 놓고 12일 격론을 벌인 유로 존 재무장관 회의와 EU 정상회의도 성과가 없었지만 드디어 어제 3차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더욱 강력하다 못해 치욕적인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국유자산 매각을 비롯해 창자가 끊어질 듯 허리띠를 더 졸라매라는 거다. 미코노스 섬 등 경관 좋은 별장 등 부동산 가격은 이미 폭락했다. 부동산 기업인 Algean 그룹은 엊그제 “섬들의 부동산 가격이 30%나 폭락했고 중동과 아시아 투자가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국유자산까지 처분, 재정 적자를 줄이라는 거다.

하긴 그리스 측도 꽤 성의를 보였다. 지난 8일 유로 구제금융인 유럽안정메커니즘(ESM)에 3년간 535억 유로(약 70조원)의 구제금융을 요청한 그리스는 부가가치세 증세와 연금개혁 등 더 걷고 덜 쓰기 개혁안을 의회가 11일 새벽 찬성 251, 반대 32표로 통과시켰고 최대 야당인 신민주주의당까지 찬성표를 던졌다는 거다. 하지만 아테네 중심부 신타그마 광장에선 대대적인 반대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난파선 ‘그리스 호’ 갑판에서까지 시위를 벌인 꼴이다. 좌파 정당 추종 시위대는 ‘국민투표로 반대한 결과는 어디로 갔나!’ ‘그리스의 신 제안 반대, EU 탈퇴!’를 외쳐댔고 이른바 슈프레히코르(Sprechchor) 식 연호(連呼)로 광장이 떠나갈 듯했다. 독일어 Sprechchor는 한 사람의 선창을 따라 일제히 외치는 군중 연호다.

난파선 ‘그리스 호’가 언제쯤 유로 존의 로프(돈 줄)에 예인돼 안전하게 피항할지는 의문이지만 더욱 한심한 건 그리스 좌파 정당과 부종(附從) 세력이다. 그리스 난파선 안에서까지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EU와의 협상 세력은 배신자라는 거다. 그럼 어쩌라는 건가. 구조 예인선을 거부한 채 모두 바다에 투신하자는 건가. 좋은 본보기, 훌륭한 반면교사 감이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