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공존·대립하는 정당구도 ‘시대 착오적’
정치가 혐오·불신 대명사 된 근원은 ‘정당체제’
여야중도세력, 이념지향 맞춰간다면 ‘변화 가능’


한국 양당체제는 역설적이게도 ‘적대적 공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보수정당이다. 물론 새정치연합이 현안이나 쟁점 집단에서 보다 진보적 경향을 띤다. 이념적 구분은 시대의 산물이고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새롭게 정립된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보수와 진보가 서구 부르주아의 발달 역사 속에서 형성된 보수와 진보를 닮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수구적 기득권의 인식에 동조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하는 집단을 ‘보수’ 또는 ‘보수세력’과 등치하는 왜곡은 시정되어야 한다.

현재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내부의 계파 갈등은 이념과 노선에 따른 균열의 측면보다는 내년 총선의 공천을 둘러싼 권력투쟁 성격이 짙다. 그러나 양당체제의 적대적 공존과 거대 정당의 카르텔 구도의 우산 속에 안주하는 세력에 맞서는 새로운 집단 출현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주 ‘진압’된 유승민 사태는 정책과 이념의 분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임기의 반환점도 돌지 않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반기(反旗)를 든 정치인의 배제를 통해 집권 3년 차의 레임덕을 막아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한 정치공학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모든 역사가 그랬듯이 다른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왜곡되어 있던 ‘보수’의 개념 부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지난 4월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의 유승민 의원의 발언은 보수에 대해 새로운 정립의 단초를 제공했다. 복지와 세금에 대한 새누리당의 전통적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 당내 민주주의에 입각한 건강한 논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등 법인세 인상의 공론화 필요성 제기, 새로운 보수의 지평에 대한 언급 등은 가치지향을 둘러싼 논쟁의 주제를 제시했다. 유승민 사태를 보는 관점이 여권 내의 권력지형의 변화나 청와대 일방 우위의 당청 관계 확인 등 정치공학적 해석에 머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본래 이념적으로 보수와 개혁을 대척점에 놓는 방식은 그릇된 배치다. 체제를 보수하고 기존의 가치를 지키자면 끊임없이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 정신을 외면하고 수구적 패러다임에 안주한다면 지켜야 할 가치를 ‘보수’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건강하지 않다. 현재의 보수세력을 보수라고 지칭하는 것은 네이밍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의 보수는 사실상의 수구다. 점점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계급 블록화의 빠른 진행을 보지 않고 애써 고개를 돌리려는 세력을 보수로 칭할 순 없다. 자신만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중도개혁 세력의 출현은 그래서 긴요하다. 특정인을 중심으로 하는 친박과 친노 세력은 그래서 이념적 구분과는 무관한 패권주의 세력 그 자체다. 지나친 이념적 좌파로의 편향도 진보와는 거리가 있다. 왜곡된 보수와 진보를 본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으려면 현재의 정당체제 개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정당 내의 원심력 작용이 설령 내년 공천 지분권 확보의 정치적 이익을 채우려는 ‘불순’한 동기라도 좋다.

현재의 거대정당의 적대적 공존으로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는 정당체제는 이미 약효를 다했다. 적대적으로 공존하면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현재의 정당구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불신의 대명사가 되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현재의 정당체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패권세력을 뒤로 한 채 두 정당의 중도세력이 이념적 지향을 맞춰간다면 정당체제가 재편될 수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로 의총을 열어 자신들이 찬성표를 던진 법안에 대해 아무 토론도 없이 ‘폐기’를 결정하는 정당은 더 이상 보수정당이 아니다. 보스가 정치의 중심에 있는 패권정당과 다름 없다. 보수와 진보가 생각의 잣대가 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영국에 버금가는 양극화의 심화, 시대착오적 사회적 계급의 블록화, 내쳐진 사다리, 비정규직의 절망 등 사회경제적 현실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인식이 전제될 때 보수와 진보의 존재 가치가 있다. 따뜻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사회적 형평의 추구와 경제적 갈등의 해결이다. 야당을 지지하지만 새정치연합의 구태와 맹목적 좌 편향이 내키지 않는 유권자, 여권 지지 성향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비민주적 리더십과 친박 ‘돌격대’들의 비겁함에 절망하는 시민들을 규합할 수 있는 야당의 출현을 기다린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