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마리 누우떼가 /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해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복효근 詩,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첫 번째 누우가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든다. 두 번째, 세 번째 누우도 강물에, 아니 악어의 입을 향해 달려간다. 살점이 튀고 핏빛 장관이 연출된다. 포식한 악어가 입을 닫자 수많은 누우가 강을 건너게 되고 생명의 대지는 열린다.
인간 세상을 돌아보자. 우리가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들어서 ‘다음 세대에게 유산으로 남길 수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가족 중에 있었고, 사회 구성원 중에 있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희생에 빚진 목숨이다. 물어보고 싶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애통해 했는가. 합당한 예우(禮遇)를 했는가. ‘그러게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니’ 하며 오히려 한숨과 비아냥으로 퉁 치지는 않았는가.
연평해전 의무병 박동혁 병장은 온몸에 100여 개가 넘는 총탄과 파편이 박혀 있었다. 목숨을 걸고 부상자를 돌봤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당시 나이 21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푸른 청춘이었다. 영화를 보고 13년 만에 그를 기억하였다. 역도선수 김병찬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국위를 선양했다. 이듬해 선수권대회에서도 은메달과 동메달을 건 위대한 선수였다. 하지만 말년은 비참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고 응급실 진료비가 없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는 지난달 26일 세상을 등졌다. 세월호가 기울었을 때 김홍경씨는 맨위 5층 오른쪽 끝방에 있었다. 가장 쉽게 탈출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에 배를 떠났다. 그는 커튼을 찢어 만든 밧줄로 스무 명 넘게 끌어 올렸다. 배관 기술자인 그는 배에 실었던 승합차와 장비를 모두 잃었다. 작년 말 위암 진단을 받고 치료비조차 힘들어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불쌍해서 유족들이 충분히 자기주장을 펼 수 있도록 기다렸는데, 모든 게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며 “한국에선 목소리가 커야 하는 것 아닌가 후회가 된다”고 했다. 그는 이번 달 2일 숨을 거뒀다. 악어를 향해 강물에 몸을 담그는 누우가 있어야 강을 건너 생명의 대지로 나갈 수 있다. 동물도 가족을 위해, 무리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을 한다. 인간과 동물은 바로 이 지점까지 서로의 길을 같이 한다. 그러나 ‘희생을 기억하고 합당한 예우(禮遇)를 하느냐’에 따라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고 서로의 길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최형근 경기농림진흥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