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어려운 베토벤이 형 크리스토프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 편지를 보냈다. ‘그까짓 음악을 해야 뭐 생기는 게 있나’ 빈정거렸고 ‘크리스토프 베토벤, 지주(地主)’라고 썼다. 화가 난 베토벤이 답장을 보냈다. ‘형의 돈도 설교도 필요 없소. 루드비히 베토벤, 뇌주(腦主)’라고. 그들은 지주와 뇌주의 갈등이었다. 소설 ‘카인의 후예’ 저자는 여럿이다. 오스트리아의 자허마조흐(Sacher Masoch)와 한국의 황순원(黃順元), 일본의 아리시마 타케오(有島武郞) 등. 아리시마가 쓴 건 ‘후예’가 아니라 비슷한 말인 ‘바쓰에이(末裔:말예)’지만. 그런데 카인의 후예에 왜 작가들 관심이 클까. ‘카인의 후예’라는 말 자체가 저주받은 무리, 죄인을 뜻하고 독수리의 첫 새끼가 둘째 새끼를 물어 죽이는 ‘카인의 증후’라는 말이 생길 만큼 인류 최초의 형제(카인과 아벨)간 살인극이기 때문이다. 같은 구약시대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 형 에서(Esau)가 아우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상속권을 판 경우는 썩 드물다.
권력과 돈 싸움이라도 살인만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3형제 갈등쯤은 아무것도 아니고 동생한테 영지(領地)를 뺏긴 형 프로스페로 공작이 동생에게 쫓겨 절해고도에 갇힌다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비극도 약과다. 오(吳)와 촉(蜀)의 대신으로 갈라선 제갈근(諸葛瑾)과 양(亮) 형제도 그렇고 고구려가 망한 건 신라에 항복한 동생 연정토(淵淨土)와 형 연개소문의 이복형제간 불화 탓이었지만 서로 죽이진 않았다. 하지만 조선조 이방원의 ‘왕자들의 난’이야말로 얼마나 참혹한 살인극 시리즈였던가. 우리 재벌가 형제들의 재산권 싸움을 ‘왕자들의 난’에 비유하는 것부터 무서운 일이지만 재벌가치고 형제들 분쟁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현대 두산 한화 금호아시아나 삼성에 이어 이번엔 롯데다. ‘형제위수족(兄弟爲手足)’이다. 형제는 손발과 같아 한 번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서로 최선을 다하라는 게 좌전(左傳)에 나오는 말 ‘형제치미(兄弟致美)’다. 재벌가 형제들도 ‘옥 같은 형, 금 같은 아우(玉昆金友)’ 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까. 동주 동빈 형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