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한 경쟁속 교수요원들 어떻게 양성할지 고민
조령모개의 자율화타령에 20년만에 구제불능 직면
지난 5월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5·31 교육개혁 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주목되었다. 임천순 세종대교수는 1995년 ‘5·31교육개혁’의 성과로 학습자 중심교육 실천, 교육선택권 확대, 고등교육 특성화와 다양화, 대학의 자율성 확대 등 대학교육의 질이 개선되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그동안 현장을 지켜온 필자의 소회는 “글쎄?”였다. 지난 세월 대학들은 정부의 ‘아니면 말고’식 개혁타령에 대책 없이 휘둘려 온 탓이다.
20년 전 김영삼 정부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일정수준의 학생정원과 교사(校舍), 교지 확보비용 등 최소한의 기준만 갖추면 누구나 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전까진 설혹 자격조건을 갖추어도 정치권과의 유착 없이는 대학설립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경향 각지에서 신생 대학들이 우후죽순 마냥 생겨났다. 전문대학이 4년제 대학으로 바뀐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4년제 대학 수가 종래 100개에서 200여 개로 증가했다. ‘서잡대(=서울의 잡대)’, ‘지잡대(지방의 잡대)’ 등 은어들이 생겨난 배경이다. 2002년을 기점으로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졸업생 수보다 많은 역전현상이 간취되었으나 무시했다.
2002년 김대중정부는 수업료와 입학금 책정권한을 대학에 선물로 안겨주었으며 참여정부는 2004년에 국공립대와 수도권 사립대 및 사범계 정원만 정부가 관리하고 나머지는 모두 대학자율에 맡긴다고 발표했다. 2007년 8월 교육인적자원부는 33개 과제의 대학자율화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기본방향을 사전규제에서 사후평가로 전환했다.
1970·80년대를 보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군부독재에 용감하게 대항했던 상아탑 전사(戰士)들에 대한 값진 보상은 ‘민주화=자율화’인 때문이다. 대학이 스스로 정한 방법으로 대학 특성과 교육목표에 맞는 학생을 뽑아 가르치는 것이 정석이다. 역대 정권들이 한결같이 자율화란 명목으로 대학의 재량권 확대에 공을 들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학교육정책은 자율화 완결 편이었다. 2012년 ‘8·27 대학자율화조치’에서는 대학의 수익사업규제 대폭 완화, 자유로운 캠퍼스 신증축, 해외부동산취득 허용, 정부의 재정지원금 집행 자율성 제고, 조세감면 확대, 교육용 기본재산의 수익용으로 용도변경 가능, 사립대 총장의 4년 임기제 폐지 등이다. 사립대학의 공공성보다 설립자의 소유권과 시장원리를 우선한 것이다. 비리재단의 잇따른 복귀와 국공립대학의 법인화도 같은 맥락이었다.
2008년부터는 대학입학정원도 급증했다. 문민정부 이래 정부가 재정적 여력도 살피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대학설립을 허용하는 바람에 부실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입학정원 확충과 학비인상에 나선 결과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초래된 것이다. 사립대학들의 천문학적인 적립금 쌓기가 빌미를 제공했다. 학령인구는 주는데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를 대학이 ‘장사꾼’처럼 부실교육을 한 탓으로 돌렸다.
현 정부는 여론몰이 식으로 대학을 반값등록금으로 옥죄었다. 부족한 대학재정을 국민 세금으로 벌충해 준다는 조건으로 강제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정원감축과 학과통폐합, 취업률 제고와 전임교원수 확대, 학점상대평가 등이다. 국공립대학은 민주화운동의 전리품인 총장직선제를 돈과 맞바꿨다. 대학마다 취업률 제고를 위해 각종 꼼수를 동원해서 제자들을 실망시킴은 물론 국제화를 구실로 자격이 의심되는 외국인들을 원어민 교수로 모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산업현장에서 퇴직한 내국인 교수들의 한물간(?) 강의내용에 학생들의 한숨도 깊다. 교육부의 전임교원 수 평가기준을 맞추려다 보니 헐값의 ‘무늬만’ 교수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시간강사들만 캠퍼스에서 사라졌다. 세계적으로 대학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는데 앞으로 교수 요원들을 어찌 키워낼지 고민이다.
조령모개의 자율화타령 20년 만에 대학은 구제불능의 한계상황에 직면했다. 플라톤은 한국의 아카데미아를 어찌 생각할까? 포퓰리즘이 한국의 대학을 좀비로 만든 것 같아 뒷맛이 쓰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