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 걱정에 애태웠던
결혼이주여성들 친정 방문길
동행한 자녀들도 엄마의 나라
문화와 정서 직접 체험하고
즐거운 추억 많이 쌓고 왔으면…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외갓집에 가는 일은 여름방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최근 용인 한국민속촌이 휴가철을 맞아 진행하는 ‘시골 외갓집의 여름’ 행사도 인기라고 한다. 행사 이름을 ‘외갓집의 여름’이라고 지은 것이 재미있다. ‘외갓집’이라는 말은 푸근하고 넉넉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외국인을 어머니로 둔 자녀들, 특히 농촌에 사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외갓집 가기가 어렵다. 농번기라서, 또는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자주 방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최근 다문화가정의 외가·친정 방문을 지원하고 환송식을 가졌다. 특히 올해는 네팔지진 이후 가족, 친지들의 피해가 걱정스러우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애를 태웠던 네팔의 결혼 이주여성들을 중심으로 친정방문을 지원했다. 다문화가정 외가·친정방문은 결혼 이주여성들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 구성원 전체에 정서적·문화적 도움이 된다. 자녀들이 어머니의 모국을 방문 함으로써 해당 국가에 대한 이해심을 키우고, 남편들이 부인의 문화와 정서를 더욱 깊이 이해할 기회가 된다. 오랜만에 친정방문을 앞둔 결혼 이주여성들은 물론 외갓집에 가게 된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밝고 행복해 보였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외가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74만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의 3%가 넘는 숫자로 웬만한 광역시 인구보다 많다. 행정자치부가 조사를 시작한 지 9년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경기도에는 전국 최대인 55만명의 외국인이 거주한다. 우리나라에 온 결혼이주 여성의 숫자도 12만명이 넘는다. 다문화가정이 가장 많은 곳도 경기도이다. 연간 경기도내 다문화 혼인은 6천500여건으로 전국의 4분의1을 차지한다. 다문화가정 출생도 5천200여건으로 전국 출생의 4분의1이 넘는다. 해마다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인구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방안이 필요하다.
2020년에는 전체 농가인구에서 이주여성 농업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3.2%에 이르고, 19세 미만 농가인구의 절반 정도가 다문화 자녀로 구성될 전망이다. 그만큼 농어촌에서 이주여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성의 약 38%가 외국 여성과 혼인했고, 결혼이주여성의 69%가 농어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이주여성이 늘면서 농촌의 출생률이 증가하고 인구 고령화가 늦춰지는 등 농촌이 젊어지는 효과도 있다. 향후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가정이 우리 농어촌의 중심세력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지역별로 농어촌 다문화가정에 대한 생활정착, 영농교육, 언어학습 등 많은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으나 보완해야 할 부분도 많다.
그동안 다문화 정책은 언어, 음식, 관습, 농촌생활 등을 중심으로 교육과 지원에 치중되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자신들에 대한 편견이나 냉대가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본인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의 자녀들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말이 서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언어부진, 학습부진을 겪기도 하고, 따돌림에 의한 정서불안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 역할은 정서적 일체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다문화가정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정책개발이 필요하다. 자녀 육아, 교육, 의료, 문화 등 다양한 복지혜택을 통해 다문화가족 구성원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책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차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다양한 언어, 음식, 풍습, 문화가 우리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다문화가정은 글로벌시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일원이자 우리 농어촌 발전을 이끌어갈 미래인력이다.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