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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계는 분노하고 있다
진정한 사과·반성 없을땐
자신들의 후세가 주변국들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비판 받아
결국 ‘부끄러운 국가’ 만들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
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일본 총리가 전후 50주년을 맞아 공식적으로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 내용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5년 8월 15일, 전후 60주년 행사에서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과 이전에 했던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하는 ‘고이즈미 담화’를 발표했다. 일제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사회당 정부였던 무라야마 총리는 물론 자민당에서도 우파 보수로 분류되는 고이즈미 총리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아베 총리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종군위안부 사실을 부정하고, 일제의 과거 침략 사실조차 부인해왔다. 최근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은 아베 총리가 14일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 초안에 ‘반성’은 포함됐지만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라는 문구는 명확하지 않고, ‘사죄’ 문구는 없다고 보도했다. 사죄가 없는 반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극단적으로는 과거 일제의 ‘패배’에 대한 반성을 한다는 의혹까지 낳는다. 오죽했으면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온 공명당도 “사죄의 의미가 세계 각국에 전해져야 한다. 일본이 왜 반성하는지, 그 대상을 명확히 해야한다”고 우려했을까.
아베 총리의 반역사적인 인식과 행동에 대해 이미 세계가 분노했다.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미국과 유럽의 일본 연구학자 187명은 지난 5월 종군위안부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동상도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학계도 동참했다. 일본의 16개 역사연구단체는 지난 5월 ‘군위안부 등에 대한 역사왜곡’ 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일본 언론들, 특히 친아베 성향의 요미우리(讀賣)신문까지 아베 총리가 어떤 형식으로든 전후 70년 담화에 ‘사죄’ 표현을 넣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이어서 아베 총리가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사죄의 표현을 담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 해결을 뜻하지는 않는다. 과거에도 역사 왜곡 망언을 했던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치, 사회,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더 노골적이고,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현대 일본의 역사 왜곡 모습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제2· 제3의 아베 총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일본의 역사왜곡 우파들은 식민지 지배, 침략이라는 잘못된 역사를 표백해서 깨끗하게 하고, 집단자위권을 행사해서 ‘대일본제국’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준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지 잘못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인종학살을 했던 독일, 흑인을 노예로 삼아 가혹하게 다루었던 미국, 원주민을 탄압했던 호주. 그들은 반성과 사죄를 통해 새로운 발전과 화합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가해자는 잊고 싶을지 몰라도, 피해자는 잊을 수 없는 것이 역사이기에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있을 때 대화합이 가능해진다. 아베 총리는 잘못된 ‘역사 콤플렉스’가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들의 후세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후세가 끊임없이 주변국들과 갈등하고, 세계의 비판을 받고 살기를 바라는가.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단어 중 하나는 ‘폐’와 ‘수치심’이다. 일본 가정에서 자녀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말과 ‘수치심을 알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세계 사람들에게 더 큰 폐를 끼치고, 일본을 부끄러운 국가로 만든다는 사실을 아베 총리는 왜 깨달으려고 하지 않을까.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