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일상을 찍고 보는 ‘영상의 개인화시대’
흩어지고 잘리듯 삶도 제대로 연결 안될때 많아
참고 견디며 감동적인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자


이윽고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릇 위에 놓인 요리는 정갈하다. 음식과 그것을 담아낸 그릇의 색상도 저마다 맞춤이다. 흰색 도기 위에 살짝 놓인 녹색 채소, 검고 붉은 칠그릇 속에 담긴 하얀 생선살, 보라색 햇가지를 감싸고 있는 겨자빛깔 튀김옷과 대나무접시. 정해진 순서대로 하나씩 하나씩 선을 보이는 요리는 그때마다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자, 그렇다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다음 행동은?

흠흠, TV속 셰프를 흉내내며 음식내음을 맡는다? 꼴깍, 침을 삼키며 한 점 조심스럽게 집어 맛본다? 천만에. 아니다. 절대 아니다. 다음 순서는 그게 아니다. 다들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리고 저마다 음식을 찍기 시작한다. 20대 후반의 딸과 아들도, 50대 엄마도 한결같다. 찍은 영상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한 뒤 비로소 흡족한 표정으로 말한다. “식겠다, 빨리 드세요.”

우리 가족 얘기다. 아니 대한민국 사람들 얘기다. 너나 할 것 없이 찍는다. 찍은 다음 그 다음 일을 시작한다. 소셜네트워크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도, 그럴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도 일단은 다 찍는다. 찍고 본다. 찍은 다음 그 쓰임을 판단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바람직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따지고 논하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스마트영상시대’니 하는 말은 오히려 진부하고 식상하게 들린다. ‘영상의 개인화(personalization) 시대’다. 개인의 일상이 영상으로 시작되고 영상으로 끝나는 희한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찍은 영상의 대부분이 파편적이고 분절적이라는 안타까움이 있긴 하지만.

나의 일터는 시대를 관통하는 이런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시민들이 영상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최적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이다. 영상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촬영장비와 시설도 ‘공짜로’ 빌려준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들이 방송콘텐츠의 형식으로 곳곳에 널리 퍼져나가도록 돕는다. 영상과 미디어교육을 통해 헌법정신을 살리고, 우리의 민주주의제도가 지속가능토록 일조하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미션은 그래서 ‘시청자의 방송참여와 권익증진을 통해 국민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의 광역권 6개 센터 가운데 하나인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13일로 첫 돌을 맞는다. 지난 1년 동안 연인원 5만여 명의 시민들이 센터를 찾았다. ‘코딱지’ 유치원생부터 ‘은발’이 눈부신 70대 어르신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었다. 센터는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놀이터였다. 자유학기제나 미디어거점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겐 진로모색과 창작의 공간이었다. 사·오십대 중년들은 새로운 배움터로 삼았으며, 어떤 이들에겐 재기의 디딤돌이었다. 정년퇴직자나 노령세대들에겐 삶의 질을 유지시키는 복지공간이었다. ‘자뻑’이라고 나무라셔도 할 수 없다. 센터를 찾는 이들에게 제각기 알맞은 크기와 모양의 ‘힐링공간’으로 기능했노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영상의 시대’이긴 하나 우리가 매 순간 찍고 있는 영상이 파편적이고 분절적이듯이 우리의 삶도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 각자는 어려운 순간을 참아내며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찍고, 스토리를 입히고, 자르고 붙이고 편집해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 그래서 나는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는 시민들에게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자, 마음껏 찍으세요, 여러분의 삶은 모두 ‘다큐’입니다.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