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미 위주로만 다뤄져
삼성물산 합병 보도 역시
사업구조 재편 당위성만 강조
추측을 사실로 단정짓는 우 범해
공정·신뢰도 수준높은 기사 기대
경제부 기자 출신으로 우리 경제 저널리즘의 병폐를 지적하는 일은 늘 곤혹스럽다. 문제를 만든 집단의 일원이 그 문제를 지적하는 격이니까. 하지만 경제 저널리즘의 영역을 벗어나 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실감하겠다. 외환위기 당시 자책했듯, 그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 불거진 롯데사태가 그랬다. 지난 달 28일 한 일본 언론의 보도로 이 재벌 일가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공개됐다. 우리 언론은 다급하게 이 사안을 쫓았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요소가 강한 만큼 흥미 위주의 보도였다. 출생의 비밀을 중심으로 한 막장 드라마는 보통 배 다른 형제자매간 분쟁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같은 모친을 둔 형제간 전면전이었다. 추측성 보도도 난무했다.
경제 현안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일은 오랜 시간과 법적 절차가 수반되는 싸움의 시작이라는 것쯤은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29일 아침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싸움이 끝났다고 단정 지었다. 아버지와 이복 누이를 데리고 시도했던 장남의 ‘쿠데타’가 ‘1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는 식이었다. 희한한 것은 형제간 분쟁의 종식 선언뿐만이 아니었다. 차남의 통합 승계가 당연시 되고, 장남의 반전 시도는 쿠데타로 격하돼 있었다.
이유야 짐작할 만했다. 차남이 장악한 한국 롯데그룹 홍보실의 설명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경제 저널리즘, 아니 저널리즘의 고질적 병폐가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안별로 사실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편이 되고 입장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정치나 연예 기사에 이어, 이제 경제 기사마저 이런 경향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 언론 보도를 통해 차남과 한국 롯데의 바람은 고스란히 사실로 둔갑해버렸다.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보도 역시 비슷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삼성의 입장을 전하는 데만 골몰했다. 삼성물산 사업구조 재편의 당위성만 강조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명분일 뿐, 실질적으로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단계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만했다. 우리 언론은 그 점을 결코 심도 있게 거론하지 않았다.
더욱 고약한 것은 국내 최대 재벌이 용의주도하게 만든 프레임(frame)을 설명하고 전파하는 데 충실했다는 점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면 애국, 반대하면 매국이라는 사고의 틀이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 반대 입장을 주도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었다. 그 결과 재벌에 찬성하면 애국자, 반대하면 매국노가 되는 기묘한 구도가 형성되고 말았다.
롯데나 삼성 사태를 보도하면서, 재벌 일가의 전근대적 사고를 그대로 이식받은 것도 우리 경제 저널리즘의 큰 문제다. 재벌은 창업주나 오너가 일군 것이며, 그들의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이쯤 됐으면 재벌은 주주의 것, 더 나아가서 사회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법도 하건만, 이런 문제의식은 아예 없었다. 주식회사(법)의 정신에 입각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은 지분으로 대기업 집단에 황제처럼 군림하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주주의 이해와 사회적 공익을 따지려는 기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 저널리즘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인 사실 확인 부족도 여전했다. 국내 언론들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핵이 될 지주회사 광윤사와 일본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조에 대해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양 썼다. 하지만 11일 차남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은 크게 달랐다. 그밖에도 많은 부분에서 추측을 사실로 단정 짓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당초 우리 언론 보도와 달리, 롯데가의 골육상쟁은 장기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후속 취재 과정에서는 이전의 문제점들을 의식하면서, 보다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수준 높은 경제 기사를 보게 되길 기대한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