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빈국서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급성장
바람직한 통일 위해 진지한 공론의 장 필요해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감격스러웠던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분단의 세월도 그만큼 흘렀다.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35년 만에 벗어나 광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독립을 위한 불굴의 투쟁에 온 민족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 정세와 시대의 흐름을 탄 면도 있지만 그러나 그 중심은 한민족의 독립역량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 역사의 면면을 보면 암울했던 시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민족의 DNA가 있다. 어려운 시절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도전으로 “할 수 있다” “해야 된다”는 열정과 긍정심을 가지고 온갖 시련을 극복해 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20세기 한 편린만 보고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을 수 없다. 오랜 역사 속에서 나라를 빼앗기는 가장 큰 시련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낸 민족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깊이 겸허하게 성찰해야 통일의 길도 바람직하게 열어갈 수 있다.
96년 전, 1919년 3월 1일 우리의 선조들은 일본이 총칼로 빼앗은 조국의 독립과 주권을 되찾기 위해 나라 사랑하는 한 마음으로 일어났다. 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독립의 굳은 신념과 애국심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이 거대한 물결에는 남녀노소, 신분과 계층, 종교와 국내외 지역의 구분도 없었다. 일제의 가혹한 무력탄압에도 불구하고, 유관순 열사 등 독립투쟁에 온 몸을 바친 우리 선조들의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3·1운동의 정신은 중국·인도 등 비슷한 처지의 이웃 나라들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3·1운동과 선열들의 끈질긴 독립투쟁은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결정할 때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 위대한 3·1정신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으로 계승되면서 번영과 기적의 대한민국 역사를 이룩한 원천이 되었다.
광복 70년 만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의 경제강국으로 탈바꿈했다. 남북의 분단과 대치상황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확립하고 광복 70년 만에 이 모든 기적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이 아니다. 민족의 자존심과 나라를 지키는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역사 대대로 숱한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 왔기에 이러한 위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선조들이 온몸과 영혼을 바쳐 자주독립을 선언하며 꿈꾸었던 나라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꿈은 자손대대로 풍성한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나라이며 또한 ‘동양의 영원한 평화’ 더 나아가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나라를 염원하였다. 이제 우리는 자손 대대로 풍성한 삶의 행복을 길이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안보가 튼튼해야 하며, 행복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경제력이 동시에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한 바탕에서 모두의 마음을 열고 화합할 수 있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아직도 남북 간에는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군사적 대결의 장벽’이 있다. 전쟁과 그 이후 지속된 대결과 대립으로 ‘불신의 장벽’도 쌓여 있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속에 오랜 기간 살아온 남북한 주민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 사이에 놓인 ‘사회문화적 장벽’도 높은 것이 현실이다.
미래지향적으로 통일의 과제는 매우 중대하지만 통일은 목적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당위론적 통일의 주장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진지한 공론의 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다시는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 우리의 소중한 장병들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상호존중과 신뢰를 통해 통일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