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여야 정치개혁 명분, 실상은 이해득실 ‘수 싸움’
근본적 혁신없이 물갈이로 젊은 피 수혈 ‘헛일’
유권자 바른선택·정치구조 변경 없다면 ‘백약 무효’


정치가 사회적 약자와 소득 하위계층에게 현재의 사회경제적 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줄 때 진정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은 투표율의 저하로 연결되고 종국적으로 철옹성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기득권 구조를 깰 수 없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겨가고 신분 상승의 기회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회적 연대에 기반을 둔 공동체 의식은 의미를 상실한다. 정치가 미래에 대한 비전과 지향을 보여주지 못할 때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민주화 이후 정치허무주의는 상당 부분 야당의 무기력에 기인한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 임기를 제외하고 줄곧 야당이다. 1990년 1월의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등장한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등극은 보수대연합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사실상의 프레임 정치의 서막이다. 3당 합당을 보수대연합으로 보든 유권자의 선택을 왜곡한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보든 1990년대 이후 한국 정치의 흐름을 바꿔 놓은 분수령이다. 이후 야당은 각 계파로 공천과 지분권을 둘러싸고 분열했다. 이념과 노선에 따른 진화가 아니었다.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의 패배 이후 이어지고 있는 야당의 무기력은 구조적이다. 야당의 선거지형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정치구조의 변화와 수권정당의 가능성으로 귀결될 때 정치는 다이내믹스를 찾는다. 여권도 지금의 위계적 질서의 당·청 관계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동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이 지난 후, 미래권력과 지는 권력 사이의 역학관계 변화에서 차기의 승리를 모색하는 판에 박힌 정치공학에서 벗어날 모멘텀을 찾을 수 있다.

변화와 혁신은 개인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과 연결될 때 의미를 갖는다. 정치의 변혁이 정치권에 머무른다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한국정치에서 권력구조의 변경이 주된 논쟁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개헌논의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도혁신이 국민과 유리될 수밖에 없음도 같은 논리의 연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가 현역 의원 20% 공천 배제안을 내놓았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전략공천 20%까지 감안하면 물갈이 비율은 40%까지 달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정치에서 물갈이는 여야 정당 전가의 보도였다. 민주화 이후 역대 선거에서 현역의원 교체율은 40%를 넘나든다. 물론 야당의 교체율이 여당보다 10% 이상 뒤지지만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17대 국회때는 초선 의원의 비율이 60%를 넘었다. 그러나 ‘젊은 피’의 수혈은 한국정치를 ‘물갈이’하지 못했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여부,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은 정치개혁이란 거창한 명분을 내걸지만 실상은 각 정파의 이해득실에 관한 치열한 수 싸움에 다름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빠지지 않는 공천 ‘물갈이’ 논란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의 상하원 선거나 중의원 선거 때 정치신인의 비율은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정치가 다양한 이해를 표출하고 관리함으로써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지향해 나가지 못하는 귀책(歸責)을 ‘고인 물’에서 찾아선 안된다.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해야 함에도 진단부터 틀렸으니 처방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한국정치의 딜레마와 프레임 정치의 악순환은 오픈프라이머리, 비례대표 비율 증가, 물갈이, 당내조직도 변경 등의 하드웨어를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고인 물’이 고여있는 어항을 청소하지 않는다면 ‘젊은 피’는 기존의 피와 화학적으로 결합한다. 보다 근본적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의 도입과 비례대표 의석 증가가 영호남에서의 교차투표로 특정지역에서의 일당우위체제를 무너뜨린들 그들이 여전히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심기에 기속(羈束)된다면 이는 개악(改惡)의 전형이다. 유권자의 바른 선택과 더불어 정치구조의 변경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백약이 무효다. 정치권의 혁신 논의는 너무 도식적이고 진부하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