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명 정부를 이끌면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주도했던 드골에게 사람을 믿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믿었던 동료의 밀고는 레지스탕스 운동의 가장 무서운 적(敵)이었다.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말을 적게 하고, 상대방의 몸짓과 말투 등 행동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항상 드골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드골이 말 한마디없이 협상을 끝낸 것은 아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신속·정확하게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고 바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말을 유도했다.
993년 거란의 침입때 중군사(中軍使)로 출전한 서희는 국서를 가지고 외교적 담판을 짓기 위해 적장 소손녕을 찾았다. 서희는 송과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거란의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거란이 송을 제압해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기 위해 배후세력인 고려와 송의 관계 단절, 고려의 중립화, 고려의 북진정책 봉쇄가 침입목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협상으로 강동 6주를 얻어냈다. ‘젊었을 때 좌익이 되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인간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좌익이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는 협상과 관련해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놓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다’는 말을 남겼다. 싸워서 이기는 것 보다 노련한 협상으로 전쟁을 피하는 것이 ‘장땡’이라는 뜻이다.
판문점에서 열린 무박(無泊) 4일의 43시간 남북 고위급 협상을 두고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사과’라는 단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고 협상팀을 비난하는 소리도 들린다. ‘유감’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포성이 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번 협상이 꼭 실패한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한 승리다. 그래서 손자는 병법에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적었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