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두 갈래, 한국이 단절하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米中二股 韓國が斷ち切れぬ 民族の惡い遺産)’이라는 그의 칼럼 제목부터 불쾌하다. ‘두 갈래’라는 ‘후타마타(二股)’의 股자는 ‘허벅지 고’자다. 그러니까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두 허벅지 사이에 끼여 있다는 거다. 장문의 칼럼 조목조목 내용에도 비위가 뒤집힌다. ‘민비 암살’로 비하한 명성황후 시해만 해도 백배사죄에 앞장서야 하는 게 양심적인 정론 언론인 아닐까. 1895년 10월 8일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지시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는 후지가쓰 아키(藤勝顯)였다. 1994년 8월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崔書勉) 원장이 일본 큐슈(九州)의 한 신사(神社)에서 발견한 길이 1m20㎝의 그 일본도 칼집엔 ‘일순 섬광살 노호(一瞬閃光殺 老狐)’라는 문구가 시해범의 아호인 ‘몽암(夢庵)’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늙은 여우(老狐)’ 지칭이 바로 명성황후였다.
박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한 건 무엄하고도 발칙한 저주다. 일본의 미국 사대주의에 대해서도 궁색한 변명을 달았다. 한국에 비하면 낫다는 거다. 최저한의 정의감과 중용의 도를 잃지 않는 언론인의 양식이 아쉽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