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을 받고 복역하고 있지만
국가는 제2의 기회 얻을수 있게
건전한 정신·건강한 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 만드는제도적 장치 마련해 줘야
최근 모 사립대학의 노령인 전 이사장이 교도소 내에서 폭력으로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해 새삼 교정시설 내 폭력이 세간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인간에게 있어서 폭력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기간 존재해 왔지만, 어떤 형태이든 명백한 범죄행위다. 이는 작게는 개인 간의 사사로운 갈등으로 빚어지는 폭력에서부터 크게는 국가 간의 충돌로서 야기되는 전쟁행위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삶 속에서 상존해 왔다.
적어도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 속에서 뭇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강압적인 폭력이 개입되면, 자유롭고 공정한 소통과 경쟁의 룰이 차단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잠재력이 침해되고 만다. 이러한 폭력행위는 어디에서든 발생하고 있지만, 교도소에서의 폭력피해가 주목받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을 얼마만큼 살펴보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지표일 뿐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있어서도 판결로 부과된 공적인 형벌 외에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 제2의 사형(私刑)까지 받게 된다는 점에서다. 비록 그들이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라 할지라도 재판을 통해 형을 받고 복역을 하고 있는 이상, 국가는 형기 후 수용자가 적절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제공해야 한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발생한 경우, 감염자들을 엄격하게 격리하되 완벽한 완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당사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에도 있지만, 퇴원 후 지역사회로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교도소 역시 죄지은 사람들에게 엄중한 징벌을 내리는 곳이지만, 더 나아가 그들이 지난 과오를 극복하고 제2의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교도소에 수용된 범죄인들 중에는 연쇄살인범과 같은 사이코페스도 있지만, 대개는 열악한 성장과정을 거쳤거나 불가피한 동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서 그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교도소는 본질적으로 폭력성향이 높은 사람들이 자유가 속박된 장소에서 집단적으로 장기간 기거하는 곳이다. 수용자들은 교정시설에 입소 순간부터 자기상실과 굴욕적 의식(儀式)을 거쳐야만 한다. 예외 없이 모두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기상하고 식사해야 하며, 다 함께 취침을 해야 한다. 먹고 입는 것은 물론 이름마저 번호로 바뀌고, 원하는 것을 보고 듣고 맡는 등의 오감(五感)을 향유할 자유까지 사실상 박탈된 채로 강제된 규율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비좁은 거실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낯선 다수와 강제로 수용되며, 혐오적인 타인의 문신이나 흉터와의 접촉도 피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외부와의 접촉 기회도 사실상 거의 차단된다.
이처럼 박탈적인 환경이 본질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수용자의 대거 입소로 수용환경이 악화되고 증오와 분노가 팽배한 사회 내 분위기가 시설내로 전이되고 있다면, 수용자들의 폭력적 성향이 분출되는 것은 극히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수용자들의 안전과 인권이 얼마만큼 보장되고 있는가의 수준은 그 사회가 불편해하는 사회 구성원들을 얼마만큼 포용하고 있는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교도소가 안전한 장소이어야 하며, 교도소가 안전한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교도소 환경이 변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대부분의 수용자들이 결국 사회로 복귀한다는 사실 때문이며, 그리고 그들이 구금 동안에 더욱 포악해진다면, 출소 후 시민들의 안전 또한 보장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찍이 앞서가는 행형개혁가들의 ‘교도소의 이상적인 모습은 시설의 안을 밖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드는 가운데 이루어지며, 안이 밖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자율성을 증진하고, 외부와는 개방성을 확대시켜 교도소가 이웃 공동체 속에서 공존하는 문화적 시설로 거듭나야 한다’는 선언은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하겠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