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육류등 대체 먹거리로 ‘쌀 수급불균형’ 초래
올해 재고량 10~20% ‘출혈 판매’… 문제 심각
쌀 가공산업 육성위한 과감한 지원책 시급


쌀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 마음에 고향 같은 푸근함을 준다. 쌀이 이처럼 일반인들에게 애착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는 보릿고개 시절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들과의 공감된 정서의 영향도 컸을 것이란 생각이다. 쌀의 소중함은 그만큼 우리의 정서적 가치와 늘 함께 하는 것 같다. 이 같은 소중한 쌀이 넘치는 재고로 최근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가을 이전 원료곡 부족만 걱정했던 경기미 역시 이 분위기에 자유롭지 않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농협 등 관련 기관들은 지난해 연말 이후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해 왔다. 밥 대신 빵과 육류, 심지어 과일까지 다양한 대체 먹거리가 그만큼 식단에 친숙해 있는 상황에서 매년 늘어난 쌀 수확량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이 문제를 만든 것이다.

쌀밥이 식사의 모든 것인 줄 알고 지냈던 시대에서나 가능한 수요도 없을 터이니 답답한 지경이다. 모든 것이 식생활 서구화, 먹거리 다양화 등 국민 식생활 변화가 만들어낸 총체적 결과인 셈이다.

쌀 소비 감소가 업계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나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는 사회적 울림이 적어 걱정이다. 국민 1인당 지난해 연간 쌀 소비 규모는 65.1㎏으로 10여년 전의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도 모자라 오는 2025년도에 소비량이 52.5㎏까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은 농업계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경기농협의 쌀 재고량은 8월 말 현재 3만2천t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만5천t 재고량에 비해 소폭 늘어난 물량 정도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질(質)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올 재고량은 지자체와 농협 등이 나서 10~20% 정도(수매가 기준)의 출혈 판매를 마친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자연 소비가 컸던 예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은행의 2분기 국민소득에 따르면 농림·어업 소득이 전기대비 12.2%나 감소했다. 지난 1990년 1분기 -16.8%를 기록한 이후 25년 만에 가장 큰 수준으로, 왜 우리가 쌀문제에 보다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부는 최근 쌀 소비를 끌어 올리려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쌀 수급불균형이란 불편한 진실 속에 몇 년째 반복된 들녘의 풍년가가 그저 야속할 뿐이다.

이 처럼 처방이 달리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분명 대량의 쌀을 해외원조 등을 통한 ‘직접 방출’일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국내 소비시장에서 만이라도 쌀이 갖는 오해와 불편한 진실을 제대로 알려 소비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다이어트 식품으로 손색없는 쌀밥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해소시키는 방안부터 마련돼야 할 것이다.

특히 과감한 쌀 가공식품 활성화정책과 체계적인 쌀 소비 홍보도 중요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쌀 재고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단기성 정책 보다는 쌀 가공산업 육성을 위한 과감한 지원에 방점을 둬야 할 것이다. 국산 쌀을 중심으로 한 고급화·다양화·차별화 전략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쌀 제품을 소비자들이 찾도록 하는 것이 ‘창조 농업’의 핵심이듯,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개발 등을 위한 관련 기관들의 분발을 함께 촉구해 본다. 쌀재고 문제로 촉발된 농업계 고충을 국민적·사회적 관심으로 극복하는 분위기 조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심재호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