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 [인터뷰…공감]'올시즌 끝으로 마침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함석훈 팀 아나운서

    [인터뷰…공감]'올시즌 끝으로 마침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함석훈 팀 아나운서 지면기사

    # 원래 직업은 KBS공채 출신 탤런트'허·동·택'과 중앙대 함께 다녔고 평소에도 농구 관심야구장도 아나운서 없던 시절 프로 출범과 함께 마이크'이름 없이 등번호만' 얼굴과 매치 안돼 시행착오도# '내 인생의 모든 것' 즐거운 농구우승경험 없지만 평균관중 2위… '19년째 동고동락'가족같은 팬에 선수·프런트와 유대… '러브콜' 거절무관중 경기에 속상…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떠올라인천을 연고로 하고 있는 남자 프로 농구단 전자랜드 엘리펀츠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2007년 프로에 입문해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만 5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주장 정영삼 선수와 2009년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유도훈 감독, 농구팬 사이에서 이른바 '삼산동 우미관 형님'으로 불리는 삼산월드체육관 경호업체 김광구 대표 등이다. 전자랜드 엘리펀츠 홈 경기장의 장내를 뒤흔드는 목소리도 2003년부터 변하지 않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자랜드 앨리펀츠 함석훈(55) 아나운서다.전자랜드가 올 시즌을 끝으로 프로농구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전자랜드 엘리펀츠란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햇수로 19년째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동고동락한 함 아나운서는 "올 시즌에는 농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감사합니다'란 말을 많이 전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팬들과 함께할 수 없어 매우 안타깝다"며 "화면으로 경기를 접하는 팬들이 체육관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함 아나운서의 원래 직업은 배우다. KBS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야망의 전설'과 '야인시대' 등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1997년부터 농구장 아나운서란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됐다. 당시는 프로야구 경기장에도 장내 아나운서가 없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함 아나운서는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다. 허재와 김유택, 강동희 선수 등과 같은 시기에 중앙대학교를 다녀서 평소에도 농구에 관심이 많았다"며 "우연한 기회에 전국 대학교 응원대전

  • [인터뷰…공감]'전국 두번째 규모' 경기도건축사회 이끄는 정내수 신임 회장

    [인터뷰…공감]'전국 두번째 규모' 경기도건축사회 이끄는 정내수 신임 회장 지면기사

    베이비부머세대 건축사들 그때 많은 걸 보고 배워 부와 지식 축적공고 졸업후 실습생 거쳐 '라이선스'… 도면부터 현장까지 섭렵용인 회장 시절 사회공헌활동비 10배로… 재수끝에 경기도회 입성'사람들과 함께 볼수 있는 건축물' 마음가짐 연장선상 활동 강조월 매출이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사업자가 열 명 중 두 명 꼴.(2017년 국정감사) 전문직으로 일컬어지는 '사(士)자 돌림' 직업 중 가장 연봉이 낮은 직업. '건축사'를 수식하는 부정의 말들은 많다. 지난해 2차례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인원은 2천298명(1천306명·992명)으로 2016년 456명의 합격자를 냈던데에 비해 불과 5년 새 5배 이상이 불었다.일감은 늘지 않았는데 배출되는 건축사는 크게 늘었고, 이 때문에 평균 사업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건설붐의 혜택을 보며 자리를 잡은 기성세대 건축사와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1인 건축사사무실의 격차는 어느 때보다 크다. 1천800명 회원을 보유한 전국 두 번째 규모의 지역건축사회를 이끌게 된 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장은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그는 '책임'을 강조했다. 선배 건축사로서의 책임, 구체적으로는 '황금기'를 보낸 선배로서의 책임이었다."지금 막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후배 건축사들에게 무엇인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새로운 업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지금 포화된 시장 속에서 가망이 없어요. 지금까지 안 해 왔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업역을 찾아서 회원들에게 소개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배출되는 건축사의 수가 늘며 과다 경쟁이 발생했고, 이는 건축사 1인당 평균 소득이 3천870만원이란 상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의사와 변호사가 각각 1억원·2억원이 넘는 소득을 거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최근 열린 대한건축사협회장 선거에서도 이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건축사계의 최대 과제는 회원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신진 건축사'·'1인 건축사'를 지원하는 것이 됐다. 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 [인터뷰…공감]'한지생각이다(주) 운영' 이미자 인천 6호 공예명장

    [인터뷰…공감]'한지생각이다(주) 운영' 이미자 인천 6호 공예명장 지면기사

    독학으로 시작… 김포서 활동하다 배다리상가에 공방 '둥지'가구·조명·지갑 등 다양… 전통문양 선호 오랜시간 정성 들여페트병 샹들리에 등 재활용 공예품만으로 전시회 올해 목표'선하고 똑똑한 종이' 강조… 제조공장·체험관 등 산업화 '꿈'한지(韓紙)는 '착한 종이'다. 세월이 갈수록 결이 고와지는 매력이 있는 이 종이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자란 닥나무 껍질을 고유의 기법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무 근본을 훼손하지 않는다. 과거부터 중국과 일본의 종이보다 우리 종이를 으뜸으로 쳤다고 한다.인천 중구 신포동에서 한지공예 갤러리·공방 '한지생각이다(주)'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자 명장은 30년 넘게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실용화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 명장은 최근 인천시 공예명장(인천 6호)으로 선정됐다. 그는 "단지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명장이라는 이름까지 얻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우리 전통 한지가 실생활 곳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확산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이 명장은 고등학교 시절 취미 삼아 박공예를 하다가 한지의 매력에 빠져 1980년대 후반부터 한지 공예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관련 서적을 사다가 종이를 찢고, 오리고, 붙이는 작업을 스스로 터득해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처음엔 김포에서 전시회를 열고, 공예 강좌를 운영하면서 유명해졌고, 20여년전부터 인천에 공방을 차리고 공예 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김포에서 작업을 하는데 어느 날 신문에 당시 최기선 인천시장이 배다리 지하상가를 인사동처럼 공예 거리로 만들겠다고 발표를 한 걸 봤어요.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에 뉴스만 믿고 요즘 말처럼 은행 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았다는 뜻)'해서 배다리 상가에 공방을 차렸어요."결과적으로 배다리는 인사동처럼 되진 않았지만 이때부터 이미자 명장은 인천에 자리를 잡고 한지 공예품을 만들었다. 지금 신포동에 공방을 차린 지는 12년 정도가 됐다고 한다.전통 한지는 닥나무 껍질에서 나

  • [인터뷰…공감]'정계은퇴 2년' 前 경기도지사 남경필 빅케어 대표

    [인터뷰…공감]'정계은퇴 2년' 前 경기도지사 남경필 빅케어 대표 지면기사

    # 정치와 '확실한 거리두기'33세에 시작… 5선 국회의원 등 거쳐공인으로서 높은 기준에 맞춰 살아와그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행복 찾기'# 스타트업 도전도 '연정'젊은 창업자·전문가와 손잡아 시너지신뢰 활용 기업에 활력 불어넣는 역할창업 고민하는 분들에 '혼자 하지 마라'# 헬스케어 이어 '마음케어' 준비작년 코로나 위험도 자가 평가앱 선봬유저 제공 정보 담아 세밀한 서비스로디지털 백신 개발… 건강한 삶에 도움경기도지사를 퇴임하고 2년여만에 다시 만난 남경필 전 도지사는 정치인의 정장을 벗고 스타트업을 상징하듯 단정한 캐주얼 차림이었다. 단순히 스타일에 변화를 준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삶의 무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느낌을 줬다. 5선 국회의원이자 전 도지사로서의 답변을 요구받는 질문에는 거리를 두면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빅케어'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대답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남 대표는 "많은 분들이 편안해 보인다고 하신다"며 "33살에 정치를 시작해 50대 중반까지 20년 넘는 시간을 공인으로서 높은 기준에 맞춰 살아왔지만 지금은 기업인이니까 그 기준점이 조금은 낮아져서 아닌가 싶다"고 웃었다.은퇴 선언 이후 정치와는 확실히 거리를 두고 있는 남 대표는 "지난해 총선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설명했더니 별다른 말 없이 돌아가셨다"며 "사람은 가슴이 뛰고 행복한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이 그렇다"고 스타트업 빅케어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했다.남 대표는 그러면서 "정치할 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비슷하다"며 "정치할 때 정책을 가지고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주자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기업을 통해 만들어낸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차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정치 은퇴 선언남 대표는 "'내가 여기(정치)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구나'하는 것을 절감했다"며 "정치가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고 다른 생각을 혼합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했는데 도지사 퇴임 후 정치가 굴러가는 모습을 보니까 내

  • [인터뷰…공감]'수인선 꼬마열차' 인천에 기증한 김의광 목인박물관 관장

    [인터뷰…공감]'수인선 꼬마열차' 인천에 기증한 김의광 목인박물관 관장 지면기사

    #25년간 소장한 협궤열차운행중단 소식 듣고 폐기직전 3량 매입사업수완 없어 활용 못했지만 팔지 않아'송도역 복원 테마공원' 딱맞는 타이밍#목인 1200점·석물 800점 소장외국인 친구 보유 한국유물에 문화충격퇴근후 골동품가게서 모아 '박물관 완성'상여 판인형 '우리만의 문화' 연구 준비수인선이 지난 9월 완전히 개통하며, 수도권 남서부를 잇는 광역철도로 재탄생했다. 운행 중단 25년 만에 표준궤도의 복선 전철로 이어진 것이다. 옛 수인선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3월 개통했다. 인천~수원까지 50여㎞에 17개 역이 설치됐으며, 시점에서 종점까지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수인선은 일제의 수탈 목적으로 건설됐다. 소래 등지의 소금을 비롯해 수원~여주 간 철도(수여선)와 연결돼 여주와 이천의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을 인천항까지 운반하는 데 이용됐다. 특히 수인선 협궤열차는 궤도 너비가 762㎜에 불과했다. 표준궤도(1천435㎜)의 절반 정도였다. 후일에 꼬마열차 혹은 소철(小鐵) 등의 애칭이 붙었던 이유다.인천과 수원을 오가며 인천시민과 경기도민의 애환을 실어나른 꼬마열차는 1995년 12월 운행을 중단했다. 이후 대전 철도차량정비창에 보관됐다. 이를 김의광 목인박물관 목석원 관장이 3량의 열차를 매입해 충북 진천에 보관했으며, 김 관장의 기증으로 열차는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와 시민 품에 안겼다. 꼬마열차의 객차 1량은 지난달부터 인천시립박물관 우현마당 한편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열차 외부는 항시 볼 수 있으며, 내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에 10분 동안 개방한다. 시립박물관 안내 데스크에 접수하면 개방 시간 동안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다.열차 내부엔 '1969 인천공작창'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다. 1969년 인천 동구 화수동에 있었던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된 걸로 볼 수 있다. 열차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중장년의 시민들을 추억으로 이끌고 있다. '타임머신'과도 같은 열차를 인천에 기증한 김의광 관장을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목인박물관 목석원에

  • [인터뷰…공감]'나눔 기쁨' 김경호 택시기사·홍계향 할머니

    [인터뷰…공감]'나눔 기쁨' 김경호 택시기사·홍계향 할머니 지면기사

    #'희망나눔캠페인 선행' 김경호 택시기사이왕 하는 거 좀 덜 먹으면 되지 싶어 더 보태샐러리맨 시절 라디오사연 듣고 생활비 지원퇴사후 집안사정이 힘들어 한동안 못하기도능력 닿는대로 여유 되는대로 이발봉사 포부#'지자체에 유산 기부' 홍계향 할머니공장일·야탑역 청소·노점장사 안가리고 다해부잣집 파출부 남은 밥 '수모' 지금도 못 잊어자식에 영감까지 죽고나니 4층 건물 '미련없이'집문서 훔쳐갈까 겁났는데 지금은 안심이 돼어린 시절 주말 저녁마다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코미디 프로그램 대신 즐겨보던 것은 '사랑의 리퀘스트'였다. 내 또래쯤 된 아이가 아픈 엄마와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 지적장애를 가진 아빠가 아이들을 키우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사연으로 방송되면 눈물 콧물 흘리며 집 전화를 들고 TV 앞에 서 있었다. 전화 한 통을 할 때마다 2천원을 기부할 수 있었는데, MC들이 '지금 전화주세요'라고 외칠 때마다 전화를 걸고 또 걸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홀린 듯 몇천원의 전화를 하고 나야 왠지 모를 뿌듯함에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다.아마도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테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릴 때 심심찮게 기부를 실천해왔다.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마스 실'을 사면 결핵 환자를 도울 수 있었고, 가정의 달이 되면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은 일이나, 어떤 때는 집에서 쌀 한 봉지씩을 가져와 근처 노인정이나 보육시설에 가져다주는 활동도 기억에 남는다.그때는 그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 것을 나누고 돌아설 때 가슴에 남는 풍요로움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이렇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기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것을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그 시절 나눔을 지금도 실천하는 가장 보통의 이웃들이 여기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친 연말, 차가워진 구세군 냄비를 따뜻하게 감싸 안은 이웃들의 이야기다.■ 수원 택시기사 김경호씨"아휴, 나 같은 사람이 기삿거리가 되나요?"인터뷰 요청에 한

  • [인터뷰…공감]'언택트시대 함께사는 세상 고민' 심재선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인터뷰…공감]'언택트시대 함께사는 세상 고민' 심재선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지면기사

    비대면 이벤트 '119원의 기적 런' 운영… 화재 피해 형제에도 도움경제 불황 반영 '사랑의 온도' 캠페인 기간·목표액 작년보다 줄여인천 아너소사이어티 5호… 취임후 9명 가입·나눔기업 7곳 동참스스로 사업 일궈낸 '90년대생' 고액기부자 회원들에 감명 받아코로나19는 꾸준하게 이어지던 지역사회의 기부문화에까지 전파됐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소외된 이웃에게 닥친 매서운 겨울 추위를 시민들의 따스한 손길로 녹이는 '사랑의 온도' 캠페인 모금 기간과 목표액을 줄인 것도 코로나19 여파가 컸다. 장기화한 경기침체에 코로나19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 취약계층의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솔직히 말해 당황스러웠습니다."올해 4월1일 취임한 심재선 제10대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이 임기 첫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서 밝힌 소회다. 심재선 인천공동모금회장이 전임 제9대 정명환 회장으로부터 모금회를 이끌어 달라고 제안받은 올 초만 해도 코로나19가 지금처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리라 상상도 못했다.인천 물류업계에 40년 가까이 몸담은 기업인이자, 인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해 지역 네트워크가 탄탄한 심재선 회장은 지역사회 기부문화의 중심축인 인천공동모금회장으로 적임자라 할 수 있다. 2011~2017년 인천공동모금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심 회장은 "회장 제안이 왔을 때 고민됐지만, 나눔문화 확산에 관심이 많고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중요해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며 "그런데 취임할 무렵부터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고 경기마저 침체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람을 만나기가 전보다 더욱 어려워진 데다가 모금을 제안하기는 더더욱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이른바 '언택트(Untact·비대면) 시대', 모금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인천공동모금회는 지난 10월부터 35일 동안 인천소방본부 등과 비대면 이벤트 기부 프로그램인 '119원의 기적 런(Run)'을 운영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각자 원하

  • [인터뷰…공감]코로나 시대 대학 위기 돌파하는 임영문 대진대학교 총장

    [인터뷰…공감]코로나 시대 대학 위기 돌파하는 임영문 대진대학교 총장 지면기사

    능동·진취적 대학생활 그리며 모토 구상 '대학 추진사업 방향타'직원·학생과 소통하고 IT기술자원 총동원해 2학기 운영 안정화베트남에 한국어교육센터 설립… 지역사회와 협력사업 강화도한 기관의 '모토(motto)'가 바뀐다는 건 새로운 변화의 신호로 볼 수 있다. 마치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바뀐 거와 같다. 경기도 접경지에 '캠퍼스 신화'를 쓴 대진대학교가 지금 그렇다. 이 대학은 '뉴 노멀(New Normal)' 시대를 맞아 변화가 감지되고 있으며 얼마 전 9대 총장으로 취임한 임영문 총장이 그 중심에 서 있다.28년 전 고등교육의 불모지 경기 북부지역에 최초로 종합대학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이정표를 세운 대진대에 임 총장은 새로운 시작을 주문했다. 'Let's DJ'. 임 총장이 내건 이 짧은 모토는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구호처럼 들린다. 학교 영문이름의 첫 글자를 따 지은 표어는 'Dream and Joy', 'Discussion and Join', 'Discover Job' 이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말로는 '꿈과 즐거움', '소통과 참여', '자기발견'으로 풀이된다. 이 단어들은 임 총장이 대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추진할 5대 사업을 상징하기도 한다.임 총장은 "학생들이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대학생활을 하는 모습을 그리며 구상한 것"이라며 "이 모토는 앞으로 대학이 중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밝혔다.그가 취임한 시기인 올해 7월은 코로나19 위기로 전국의 대학가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비대면 수업에 따른 혼란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취임하자마자 주어진 '미션'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임 총장은 비대면 수업이면서도 수업의 질을 떨어트리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는 직원,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 교수를 대상으로 비대면 수업진행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교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 자원을 총동원한 끝에 2학기 학사운영은 안정화를 찾을

  • [인터뷰…공감]'군집 드론 비행 국내 최고 자부' 김영준 파블로항공 대표

    [인터뷰…공감]'군집 드론 비행 국내 최고 자부' 김영준 파블로항공 대표 지면기사

    '파일럿 꿈' 특전사로 복무… 드론 SW개발자 5년간 일하다 '독립'초반 비행아트쇼에 초점 '1명이 수십대 컨트롤' 제어기술에 집중정확한 위치정보 '오차 10㎝ 미만'…300대 동시 비행 기술력 갖춰레바논 등 플랫폼 수출·특허 7개 보유… 향후 드론택배·택시 포부지난달 21일 초속 12m가 넘는 강풍을 뚫고 (주)파블로항공의 드론 2대가 육지와 33㎞ 떨어진 인천 옹진군 자월도 해안에 착륙했다. 인천 신항에서 출발한 2대의 드론은 영흥도와 자월도 등을 4바퀴 선회한 뒤 1시간20분 동안 80㎞ 거리를 비행해 자월도에 의약품을 배송하는 데 성공했다. 파블로항공이 1년 전 제주 서귀포~우도에서 세웠던 57㎞ 비행 기록을 자체적으로 경신한 국내 최장거리 '드론 물류 배송'이었다.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산학융합원에 본사를 두고 있는 파블로항공은 여러 대의 드론을 한 명이 조작해 동시에 비행하는 '군집(群集) 드론 비행 기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라고 자부한다. 지난달 드론으로 자월도까지 의약품을 실어나를 때에도 군집 드론 비행 기술이 활용됐다. 대부분 업체는 드론 하드웨어를 국내에 수입해 대리점 형태로 판매하는 반면, 파블로항공은 군집 드론 비행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파블로항공 김영준(31) 대표는 "드론을 통한 물류 배송이 활성화하면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 주민들도 1시간 안에 택배를 받고, 아침에 먹고 싶은 육지의 식당 메뉴를 그날 점심으로 즐길 수 있다"며 "파블로항공은 '드론 택배' 상용화에 중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드론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분야로 꼽힌다. 군사 목적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드론은 2010년대 들어 '어른들의 특별한 장난감'으로 변모했고, 최근에는 산업을 비롯한 더 폭넓은 분야에서 활용될 미래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김 대표가 처음 드론 산업에 뛰어든 시기는 드론이 레저용으로 주로 사용되던 2014년이다. 그는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특전사 부사관으로 군(軍) 복무를 마쳤는데, 집안

  • [인터뷰…공감]전통유산 지켜온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8호 김종욱 단청장

    [인터뷰…공감]전통유산 지켜온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8호 김종욱 단청장 지면기사

    13살때 혜각스님 만나 불화 입문… 국보 1호 작업 등 업적코로나 탓 강의 힘들지만 다행히 제자 3~4명 꾸준히 지도단청 작업한 숭례문 전소땐 눈물… 복원 도움 주고자 조언일본기내 소개방송 경험… 우리 정부·기관 인식 변화해야청·적·황·백·흑이 모여 만들어지는 오방색. 불전의 서까래와 기둥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오방색은 처마 밑 무늬의 기품을 더한다. 오방색은 우리 실생활과도 밀접해 있다. 흔히 집에서 사용하는 방석을 비롯해 접시, 그릇 등 실생활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전통유산인 '단청(丹靑)'을 살펴봐도 그 화려함과 색감에 놀란다. 이런 오방색 무늬를 수놓으면서 70년 동안 단청을 지켜온 명장 김종욱(87·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8호) 단청장을 '인터뷰 공감'에 모셔봤다."우리 스스로가 문화재를 지켜야 합니다. 유형문화재도 무형문화재가 만듭니다.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외부인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 단청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터뷰를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올해는 강의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냈는데 다행히 경기도 제자 3~4명을 꾸준히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청이라는 것이 워낙 힘들고 밥벌이가 쉽지 않아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사라질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단청은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건물에 색을 입히는 작업만 하는 단청장을 '어장(魚杖)'이라 부르고 불화(佛畵·불교의 종교적인 이념을 표현한 그림)까지 그려내는 단청장을 '금어(金魚)'라고 부른다.경기도무형문화재 제28호 장인으로 손꼽히는 김 단청장은 '탱화(幀畵·천이나 종이에 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 벽에 거는 것)와 불화, 벽화까지 작업 가능한 국내 유일의 장인이다.김 단청장은 "단청은 서까래나 기둥, 전각을 장식하는 용도뿐 아니라 부식과 습기를 막아 목재를 오래도록 보호하기 위한 기능도 갖고 있다"며 "대개 단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