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 [참성단] 2024 파리 패럴림픽

    [참성단] 2024 파리 패럴림픽 지면기사

    패럴림픽은 영국 스토크맨더빌 병원이 2차세계대전 부상 병사들의 재활 프로그램으로 개최한 양궁대회가 기원이다. 1960년 '국제 스토크맨더빌 게임'을 올림픽 개최지인 로마에서 개최하면서 국제 장애인 스포츠 제전으로 격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올림픽 시설을 활용한 패럴림픽 개최가 시작됐다.패럴림픽은 하반신이 마비된(paraplegic) 장애인의 올림픽이란 뜻이다. 지금은 '함께'(para)와 나란히(Parallel)로 새긴다. 모든 장애인이 참여하는 올림픽이자, 동·하계올림픽과 같다는 의미다. 1988년 '서울장애자올림픽'이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라는 법정 명칭으로 바뀐 데에는, 장애인 인권 확장과 차별 철폐에 기여한 패럴림픽의 역사가 있었다.오늘 새벽 3시 2024 파리 패럴림픽이 개막했다. 184개국 4천400명의 선수들이 22개 종목에서 기량을 겨룬다. 우리나라는 83명의 국가대표가 17개 종목에 출전한다. 대한장애인체육회가 밝힌 목표는 금메달 5개, 종합순위 20위가 목표다. 최대 관심사는 '보치아' 10연패 달성 여부다. '골볼'과 함께 패럴림픽 고유 종목인 보치아는 공을 표적구에 가깝게 붙이는 경기다. 이번에도 금메달을 획득하면 양궁 여자단체 10연패와 견줄 위업이다.경기도에선 7종목에 13명이 출전한다. 리우 패럴림픽 수영 3관왕인 조기상이 도쿄 패럴림픽 무관의 수모를 씻을지 주목된다. 유일한 10대인 서민규(안산)는 보치아에 출전한다. 인천에선 철인3종 경기에 김황태 선수가 핸들러인 아내 김진희씨와 레이스를 함께한다.'올림픽에서는 영웅이 탄생하고 패럴림픽에는 영웅이 출전한다.' 패럴림픽의 정신을 함축한 명언이다. 국가대표들의 장애를 일별하면 그 의미를 저절로 깨닫는다. 하지만 늘 말의 성찬으로 끝난다. 눈에 보여야 영웅이다. 패럴림픽 때마다 올림픽에 비해 터무니 없는 언론의 무관심이 도마에 오른다. 낯이 뜨겁다.수백, 수천건의 장애인 인권 보도 보다 패럴림픽 전종목 생중계 한번이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할 테다. 파리 올림픽의 감동이 말라간다. 메달

  • [참성단] 집 밖은 키오스크 세상

    [참성단] 집 밖은 키오스크 세상 지면기사

    직장인 A씨는 카페인 충전이 필요한 출근길이면 카페를 들러 키오스크(Kiosk·무인단말기)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음식점 테이블마다 놓인 메뉴판 모니터 앞에서 손가락은 잠시 즐거운 방황을 한다. 퇴근 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티켓 확인부터 팝콘 등 주전부리 구입까지 터치 몇 번이면 해결이다. 쇼핑몰을 가도 주차위치 확인·요금 결제까지 빠른 출차를 위한 필수 코스다. 모처럼 해외여행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면 키오스크 앞으로 직행, 셀프 체크인·백드롭은 속전속결이다. 정보를 등록해 놓으면 안면 인식만으로 출국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시대라니 A씨의 키오스크 효능감은 날로 높아간다.집 밖으로 나가면 키오스크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키오스크의 영토 확장에는 무엇보다 언택트 문화를 확산시킨 코로나19가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모두가 키오스크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새벽시간 꽃집을 찾은 한 할아버지는 꽃다발 값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갔다. 키오스크 사용법을 몰라 3시간 뒤에 다시 방문해서 3만원을 냈다. 말이 안 통하는 기계 앞에서 진땀이 나고 머리가 하얘졌을 할아버지가 할머니 생일선물을 준비하면서 겪은 경험은 안타깝고 씁쓸하다.1990년대부터 관공서·은행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키오스크는 이제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납골당에서 고인의 봉안 위치정보를 안내해 주던 키오스크가 결혼식장에도 등장했다. 이름하여 '축의금 키오스크'다. 접수대 대신 세워진 기계에 축의금을 입금하면 식권과 주차권이 나온다. 마치 영수증을 발급해 주는 듯한 신풍속이다. "저출생 시대다 보니 접수대 지킬 친척이나 지인 한 명 구하기도 힘든데 다행이다", "도난·분실사고 걱정이 사라졌다"라는 긍정론과 "축의봉투 정성껏 준비했는데 예의가 아니다", "돈부터 챙기는 느낌이 든다"라는 회의론이 맞선다.똑똑하고 빠른 디지털 신문명의 그늘은 짙다. 세상의 속도를 그때그때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소외이고 상처가 된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겨우겨우 배웠더니, 키오스크라는 녀석이 나타나 가는

  • [참성단] 귀뚜라미

    [참성단] 귀뚜라미 지면기사

    처서 지나 백로가 다가오니 풀벌레 울음소리가 달라졌다.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폭염의 기세는 여전해도 자연의 시계는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매미 울음소리, 선음(蟬音)이 여름의 상징이라면 귀뚜라미 울음소리, 실솔음(실솔音)은 가을의 상징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을 정취를 맛보기 위해 청솔당(廳솔堂), 즉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는 집이라는 당호를 짓고 가을의 낭만을 즐기려는 시인도 있다.일본의 전통시가인 하이쿠에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많다. 하이쿠는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로 17자로 구성되는 한 줄 정형시다. 극도로 절제된 언어와 축약된 표현으로 언어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본의 대표적 전통 시가 바로 하이쿠다. 하이쿠의 영향을 받았거나 하이쿠와 유사한 단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시인으로는 '지하철역에서' 등처럼 시적 실험을 시도한 미국의 에즈라 파운드(1885~1972)를, 국내 시인으로는 나태주(1945~)와 수원 출신 최동호(1948~) 고려대 명예교수를 꼽을 수 있다.일본의 하이쿠 시인으로 바쇼·부손·잇사·지요니 등을 들 수 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소재로 한 하이쿠로는 지요니의 "보름달 뜬 밤 돌 위에 나가 우는 귀뚜라미", 지게쓰의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허수아비 속에서", 그리고 바쇼의 "참혹하구나, 갑옷 밑의 귀뚜라미 울음소리" 등이 특히 유명하고 널리 애송된다.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도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기 어려워/서리 내린 뜰에 늙고 병든 사람/희미한 소리로 귀뚜라미 우는데/마른 잎은 오동나무에서 떨어지는구나/귀밑 머리털은 수심으로 희어졌는데/취기에 잠깐 새 붉어지는구나/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가을바람을 어찌하겠는가"라고 읊었다.8월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가 25일 기준 10.3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서울 기준 34일간 이어졌던 열대야가 멈춘 지 단 하루 만에 다시 열대야가 시작됐고, 제주에서는 42일째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제10호 태풍 '산산'이

  • [참성단] 죽음을 조롱하는 사회

    [참성단] 죽음을 조롱하는 사회 지면기사

    지난 21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미네소타 주지사인 팀 월즈가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했다. 그런데 아들 거스가 아버지를 밀어내고 깜짝 스타로 빛났다. 아버지의 연설에 감동한 17세 아들이 "저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펑펑 우는 장면이 생중계된 것이다. 민주당원뿐 아니라 전대 시청자들이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트럼프 지지자들은 반대로 조롱했다. 한 여성 보수 논객은 "이상한 애"라 했고, "멍청하게 우는 아들"이라거나 "탐폰(생리대)을 갖다 줘라"는 팟캐스터들도 있었다. 트럼프의 MAGA 캠페인과 마초 캐릭터에 경도된 지지자들에겐 거스의 오열마저 민주당을 비난할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거스가 비언어적 학습장애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역풍이 불었다. 아이와 장애인을 동시에 공격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인면수심에 민심은 진저리쳤다.지난 22일 부천 한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끔찍한 참사다. 호텔의 대응이 빨랐고, 구조에 빈틈이 없었다면 다 살릴 수 있었던 생명들이었다. 안타깝고 슬퍼해야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온라인에 조롱글이 넘친단다. 평일 호텔 투숙에 대해 제멋대로 상상한 억측으로 희생자들을 모욕한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지경에 이르렀다.안타까운 희생자와 숭고한 희생을 막말로 조롱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세월호 유족들을 조롱하고, 천안함 전사자와 함장을 모욕한다. 급기야 시청역 역주행 사건 희생자들을 향해 조의랍시고 올린 글이 "토마토 주스가 되어버린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였다. 정치적 분열이 잉태한 증오와 혐오가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세태의 증거라면 아찔하다.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혐오와 증오에 갇혔다. 정부·여당은 조선총독부의 후예, 야권은 사이비 선동세력이다. 정략적 언어폭력으로 대한민국 정부와 정당들이 허구의 괴물로 전락했다. 실제로 그럴리가 없는데 경도된 이념적 지지자들은 허구의 세계에 갇혀 상대를 끊임없이 조롱한다. 조롱은 일상으로 퍼져 생명의 가치마저 희롱한다.인류는 말로 멸종될지 모른다. 혐오 가

  • [참성단] 한 학년 절반이 학폭 가해자?

    [참성단] 한 학년 절반이 학폭 가해자? 지면기사

    유명인에게 학교폭력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배구 국가대표팀 공격수와 세터였던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학폭 가해자였다는 연쇄 폭로로 V-리그를 떠나야 했다. 자매는 억울하다 했지만 피해자의 기억은 선명했다. TV조선 '미스트롯2' 경연에서 준결승에 올랐던 '진달래'도 무명의 설움을 벗고 별이 되기 직전에 학폭 논란으로 하차했다.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때문에 취임 하루전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이 취소됐다.각계의 '셀럽(celebrity)'들이 학폭 저격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학폭의 기억에 영원히 박제된다고 한다. 죽을만큼 고통스럽고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자신을 끔찍한 폭력의 기억에 가둔 가해자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이라면 피해자의 고통은 필설로 형언하기 힘들 테다. 폭로는 피해자가 살기위해 선택한 마지막 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폭력이 사실일 때의 명분이다. 만약 허위 폭로라면 용서할 수 없는 인격살인이자 명예살인이다.남양주의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 전체가 학폭 시비에 휘말렸다. 이 학교 6학년 학생 41명 중 20명이 46건의 학폭 혐의로 경찰과 학교에 신고됐단다. 피해 신고자는 한 학생이라는데, 신고당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허위 신고'라 주장한다. 학부모들은 학교와 교육당국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며 지난 20일부터 6학년 자녀들의 등교를 거부하고 나섰다.한 학년 절반의 학생이 한 학생에게 폭력을 가했다니 사건의 양상이 상식 밖이다. 게다가 경찰에 형사 고소한 당사자가 학생인 점도 기이하다. 신고당한 학생들의 학부모는 허위 학폭 신고 때마다 1주일간 분리 조치돼 수업을 못받는 상황에 분노한다. 반면에 신고 학생 부모는 폭력이 사실이라 주장한다. 학교와 교육청은 학폭 처리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어 난감한 표정이다.신고 당한 학생들뿐 아니라 신고한 학생도 걱정이다. 본인의 의지로 동급생 절반을 신고했다고 믿기 힘들다. 동급생들이 신고자와 피신고자로 나뉘어 교실이 황폐해졌다. 사건의 양상이 비정상적이면 상담

  • [참성단] 현물 vs 현금, 무상교복 논란

    [참성단] 현물 vs 현금, 무상교복 논란 지면기사

    교복은 학생의 상징이다. 제복의 속성상 디자인에 한계가 있다. 재킷과 셔츠에 스커트나 바지 구성이 보편적이다. 패션계의 거장 고(故) 앙드레 김이 2005년 경기도의 한 고교를 위해 디자인한 리본타이 교복이 화제가 된 이유이다. 일본은 세일러복에 국민 책가방 란도셀을 멘다. 네덜란드 군용배낭 란셀(ransel)에서 유래한 란도셀의 평균 구입액이 50만원대에 달하니 부모들에게는 '등골 브레이커'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활동적인 체육복 교복이 급부상했다. 모든 학생이 체육활동에 참여하고 수업시간 중간에 체조를 한다. 여러 나라에서 야구점퍼·원피스·후드티 등 개성과 기능성을 더해 진화하고 있다.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떤 교복 스타일을 선호할까.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5월 중·고생(1천71명)과 만 19세 이상 도민(1천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결과가 흥미롭다. 학생은 정장형 교복보다 캐주얼한 옷(39%)을 첫손에 꼽았다. 이어 체육복(34%)·정장형 교복(11%)·생활복(11%) 순으로 답했다. 반면 도민은 정장형 교복(38%)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캐주얼한 옷(32%)·생활복(16%)·체육복(11%)이 뒤를 이었다. 학생들은 활동성이, 성인들은 단정함이 우선이었다.이와 함께 중·고생 65%와 도민 68%는 현행 교복 지원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무상교복은 2019년 중학교 신입생부터, 2020년엔 고등학교 신입생으로 대상을 확대해 시행됐다. 학교가 경쟁 입찰을 통해 교복업체를 선정하면, 교육청이 대신 교복비를 업체에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도교육청 50%·도 25%·시군 25%를 부담한다.최근 도의회에서 교복 현물 대신 현금 지급이 가능한 개정조례안이 추진돼 갑론을박이다. 그동안 교복업체의 담합 의혹과 중국산 소재를 속이는 택갈이 등 품질 논란이 이어졌다. 인천의 한 학부모는 국민신문고에 '저질 교복'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금 지급으로 전환되면 선택의 폭은 넓어지지만, 보편복지의 취지가 퇴색되고 학생 간 격차와 차별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무상교복은 차

  • [참성단] '알랭 들롱'

    [참성단] '알랭 들롱' 지면기사

    누벨바그(Nouvelle Vague·새로운 물결)는 1960년대 전후 프랑스에서 등장한 영화 사조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감독 등이 이끈 누벨바그는 혁신과 동의어였다. 스튜디오 조명보다 자연광, 즉흥적인 연출의 플래시백과 플래시 포워드, 비선형적인 스토리 전개는 당시 젊은 세대에게 자유와 반항으로 각인됐다. 누벨바그 황금기의 중심에는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이 존재했다. 들롱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를 연기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요즘 MZ스타일로 표현하자면 '세계 최고의 얼굴천재'다.영화 속 리플리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방탕한 부잣집 외아들 필립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사인·유서 위조에 목소리까지 흉내낸다. 우수에 찬 푸른 눈동자는 들롱의 실제 불우했던 시절과 교차되며 위험하고 불안한 캐릭터임에도 관객들을 동화시켰다. 동경과 경멸을 오가는 내면 연기에 리플리가 알랭 들롱이었고, 알랭 들롱이 리플리였다. 작열하는 태양과 요트 하면 연상되는 명장면, 키를 잡고 지중해 파도를 가르는 모습에 많은 청춘들이 빙의했다.알랭 들롱은 1957년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해 2019년 마지막 작품 '우리 모두 사랑한 여인'까지 60여 년간 90편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1995년 베를린 영화제 명예 황금곰상에 이어 2019년 칸 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알랭 들롱은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맡았는데 현실에서도 때때로 악역을 자처했다. 끊임없는 스캔들 메이커로, 경호원 살인사건 용의자로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진보 노선을 비판하고 사형제 폐지와 동성 결혼 허용을 반대했다. 2019년 뇌졸중으로 고통받으며 안락사를 희망하는 등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하지만 넌 결코 알랭 들롱이 될 수 없지(But you'll never be Alain Delon)." 마돈나는 노래 'Beautiful Killer'(2012)의 마지막 가사에

  • [참성단] 소나기

    [참성단] 소나기 지면기사

    우리에게는 두 개의 소나기가 있다. 하나는 여름날 예고 없이 짧은 시간 동안 세차게 내리는 자연현상으로서의 비가 있고, 다른 하나는 가슴 속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국민소설 황순원의 '소나기'(1952)다. '소나기'는 어린 소년과 소녀의 맑고 순수한 첫사랑을 그린 단편소설로 여러 면에서 알퐁스 도데의 '별'(1866)과 대비되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이 국민소설이 된 까닭은 막 이성에 눈을 뜬 풋내기 청춘들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서정적 이야기이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설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들 작품은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시기 우리들의 문학적 경험의 원체험으로 작동하고 있다.두 작품 모두 흠잡을 데 없는 맑고 고운 순수서정으로 빛나는 작품임에 틀림없으나, 막 이성에 눈을 뜬 청춘들에게 남녀 간의 사랑은 성적 결합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맑고 순정한 감정에 있다는 점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교육부 당국의 훈도와 교육의 목적으로 국정교과서에 수록된 것이다. 그러나 '별'이나 '소나기'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야말로 여름날 느닷없이 쏟아지는 세찬 소나기처럼 인생을 살면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짧고 강렬한 경험이자 사태임을 보여준다. 마음의 근육이 채 형성되기도 전인 질풍노도의 청춘 시기 아무런 준비도 없는데 갑자기 찾아와 아픈 기억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잔인한 축복이기에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을 번뇌라 할 수 있다.이 같은 이중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소나기'와 '별'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1992)로 유명한 레오 카락스의 데뷔작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라든지 수원 출신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2003)이 그렇다. '클래식'은 명백히 '소나기'의 변주이자 오마주다.서울과 수도권의 열대야가 19일 현재 28일째 이어지고 있어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열대야 일수로만 보면 2013년 서귀포의 57일과 1994년 서울의 36일이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런 폭염에는 잠시라도 더위를

  • [참성단] 국경일 분단 정치

    [참성단] 국경일 분단 정치 지면기사

    제79회 광복절은 결국 두 개의 기념식으로 쪼개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경축식에서 '3·1운동, 상해임시정부 수립, 독립운동, 광복, 정부수립'을 건국과정으로 통합한 뒤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이라며 통일 독트린을 공표했다. 같은 시각 별도의 기념식에서 광복회의 김갑년 교수는 윤 대통령을 향해 "친일 편향의 국정기조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청중은 "타도 윤석열"을 외쳤다.78년 동안 국민통합의 시공간이던 광복절의 기운이 단 한 해의 분열로 빛이 바랜 채 공허하게 흩어졌다. 광복회의 분노에 편승한 야당의 정권 규탄은 서슬이 퍼렇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사실상 정신적 내선 일체 단계에 접어든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친일 매국 정권"이라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을 "일제 밀정 같은 자들을 요직에 임명한 왕초 밀정"이라며 "조선총독부 10대 총독이냐"고 반문했다.대통령은 야당의 공세를 예상한 듯 경축사로 답했다. "국민을 현혹하여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것이 전략"인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을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 규정했다. 정부 경축식을 파투낸 진영과 세력에 대한 대통령의 분노는 '불특정 사이비'로 표출됐다.보수와 진보 정권이 교차할 때마다 진영 간의 역사 인식과 해석이 반동적으로 충돌했다. 응축된 충돌 에너지가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솟구쳐 광복절을 두동강 냈다. 현실 정치가 역사를 규정하는 일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 처럼 가소로운 일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벌어질 코미디다. 독립운동사를 통째로 김일성 신화로 둔갑시킨 북한이 그렇다.반동은 반동을 부른다. 대통령 부부를 "살인자"라 한 전현희 의원의 발언에 김종혁 최고위원이 "그럼 그분은 연쇄살인자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고 받는 식이다. 국민의힘은 조선총독부 총독 운운한 조국 대표에게 "만주나 평양에 가라"고 했다. 반동의 무한 반복에 갇힌 역사는 실체를 잃는다. 국민의

  • [참성단] 하이엔드 커피

    [참성단] 하이엔드 커피 지면기사

    영화 '밀정(2016)'에는 '카카듀' 간판이 내걸린 경성 거리가 등장한다. 카카듀는 1928년 서울 종로 관훈동에 한국인이 처음 차린 서양식 다방이다. 나운규의 스승인 영화감독 이경손과 오촌 조카 현앨리스가 함께 운영했다. 카카듀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라밖 세상의 정보를 공유하고, 시대적 각성과 계몽을 논했던 당대 독립운동가·예술인·지식인들의 아지트였다.6·25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커피는 1955년 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1970년 당시 다방 커피 한잔 값은 노동자 일당과 맞먹는 50원이었지만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뜨거웠다. 동서식품은 1970년 인스턴트커피를 출시한데 이어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까지 개발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최적화된 커피 자판기도 일상을 파고들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오픈했고, 2000년대 들어 무수한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바야흐로 커피전문점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최근 원두 100g당 140만원짜리 커피가 한국에 상륙해 떠들썩하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싱가포르 '바샤 커피' 국내 1호점이 서울 청담동에 오픈했다. 2개 층 약 380㎡(115평) 규모의 매장은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오리지널 커피룸을 오마주해 화려한 궁전을 연상케 한다. 가장 비싼 메뉴는 커피의 본고장 브라질 '파라이소 골드 커피'라는데, 원두 100g당 140만원의 주인공이다.커피룸에서 마시면 한 잔에 48만원(350㎖ 기준), 테이크아웃하면 20만원이다. 슈퍼리치들이 사고파는 아파트 값이 100억원 천장을 뚫었다지만 커피값치곤 초현실적이다. 발빠른 한 유튜버가 솔직한 커피 시음기를 공개했다. "커피 원두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로 머릿속에서 표현할 수 없었다"며 "커피향은 아주 은~은한 페브리즈향(?), 맛은 메가커피 조금 옅은 맛이다"라고 직설해 웃음을 자아낸다.소비 트렌드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한 번뿐인 인생 폼나게 지르고 사는 욜로족과, 필요한 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요노족이 동거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