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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기대 훨씬 못미치는 할인율·제한된 품목 ‘실망’
쇼핑객들 “배신감에 시간만 낭비했다” 불만
획기적 개선없인 소비자들 신뢰에 큰 타격 입어

시쳇말로 요즘 가장 ‘핫’한 뉴스 키워드를 꼽는다면 ‘폭스바겐’ 그리고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가 아닐까 싶다.

폭스바겐 사태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 그룹이 디젤 차량에 배출가스 조작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사실이 밝혀진 데서 비롯됐다. 전 세계적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파문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형국이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에서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대규모 세일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의 한국판 할인 이벤트다. 지난 1일 시작돼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정부가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를 위해 기획했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되고 처음 맞은 주말, 한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했던가. 쇼핑객들은 북적거리는데 정작 살 물건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자동차 분야의 폭스바겐 사태와 소비문화 분야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서 어떤 공통적 요소를 찾는 것은 억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서 폭스바겐 사태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수학에 빗대면, 일종의 교집합의 빗금이다.

우선 배신감이다. 폭스바겐 그룹이 어떤 회사인가? 도로에 ‘비틀’ 한 대라도 지나가면 행인들이 선망의 눈으로 그 물방개를 닮은 차를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기술력과 디자인 그리고 독일 특유의 장인정신을 부러워했다. 폭스바겐을 비롯해 아우디·스코다·람보르기니·벤틀리·포르셰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이 회사는 지금 소비자를 속인 데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을 쇼핑하라’는 슬로건에 이끌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장을 찾은 한국의 소비자들도 적잖은 배신감을 맛보았을 터다. 알뜰 쇼핑족임을 자처하는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도 이른바 ‘득템’을 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는 불만의 목소리 일색이다.

다음으로 ‘신뢰의 상실’이 엿보인다. 배신감에 이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업에 대한 신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1980년대 발생한 ‘우지(牛脂)파동’에서 경험한 바 있다. 당시 라면시장 선점업체인 국내 한 회사가 공업용으로 수입된 우지로 라면을 튀겼다는 식의 ‘우지파동’에 휘말린 적이 있다. 나중에 법정에서 이 회사가 사용한 기름이 고급 식용 우지였다고 결론이 났지만 이 회사는 대중적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고 업계 1위 자리를 내주고야 말았다. 사실관계가 부정확한데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차량에 설치된 소프트웨어가 정기검사나 실험실 테스트를 받을 때만 가동되고 도로에서 실제 주행할 때는 작동하지 않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폭스바겐의 위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할인율, 제한된 할인 품목으로 신뢰에 타격을 입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또한 남은 기간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의 신뢰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탁상공론이 만들어낸 표절행사의 극치’라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소비자들의 뇌리에 부정적 인식이 각인된다면 제2, 제3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어설픈 할인행사로 교통체증을 일으킬 바에야 차라리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을 키우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게 낫다. 마케팅계에선 이런 격언이 있다고 한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소비자다.” 귀담아들어야 할 이들이 많은 요즘이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