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치권으로 넘어오게 된 ‘선거구획정안’
여야, 슬그머니 영·호남 지역구 살리는 쪽으로
매번 장난질 대상되는 수도권 ‘무관심’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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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록 정치부장
사실, 대다수 국민들은 벌써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뻔히 그럴 줄 알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던 것일 뿐, 결국엔 그들의 주판알 튕기기로 결론이 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19대 총선 때 우리 정치권은 선거를 불과 두 달 여 앞두고서야 선거판을 짰다. 옆 동네 윗동네를 이리 떼고 저리 붙여, 어지간한 예술작품 울고 갈 ‘창조적’ 선거구를 만들어 냈다. 해당 지역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정치권의 몰염치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는 했으되, 우매한 민초들의 아우성은 기껏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난다는 걸 잘 알고 있던 정치권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말 많고 탈 많던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획정안 국회 제출 시한을 넘기면서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은 다시 정치권의 손에서 주물러지게 됐다. 경기의 룰을 당사자인 선수들이 직접 짜는 꼴, 선수들이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건 살리고 불리한 건 죽일 테니 그들 입장에선 이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가 또 없다. 적당한 힘겨루기와 치고받기가 이어진 뒤 이내 ‘기브 앤 테이크’가 성사될 것이고, 국민들에겐 서로 ‘저쪽 탓’에 어쩔 수 없었다며 약간의 유감만 표명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선수들 간 합의에 관중들은 철저히 배제됐다는 점이다. 영남과 호남이라는, 승부가 너무도 뻔한 홈구장에서만 제각기 많은 경기를 치르고 싶어 하니, 변변하게 실력 있는 팀 하나 갖지 못한 수도권 관중들만 시쳇말로 ‘호갱’이 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애초 인구 편차 2대1 기준으로 상·하한선을 잡았던 획정위 안대로라면 경기도는 최대 9곳, 인천은 1곳의 선거구가 증설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각각 지역구 수와 비례대표 비율을 내세우며 양보 없이 이어진 여야의 공방은 슬그머니 영·호남 지역구는 살리고 수도권 증설은 줄이는 쪽으로 논의의 방향을 틀고 있다. 의원 정수를 그대로 둔 채로 농어촌을 살리고 지역구 의석도 유지하려면 인구 상·하한선을 올릴 수밖에 없는데, 인구 상·하한선을 올려서 타격을 받는 건 온전히 경기도·인천이다. 행정구역을 통째로 떼어내 다른 지역에 갖다 붙였던 19대 총선 때의 수도권 지역 게리맨더링이 거짓말처럼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수원과 용인이 험한 꼴을 당했다면 이번엔 안산, 부천이 폭탄을 맞을 처지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 뿐.

냉소적으로만 말한다면 성폭행에, 이권 개입에, 뇌물 수수에, 온갖 갑질의 대명사처럼 인식된 국회의원을 자기 지역에 여럿 모시고 싶은 국민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몇몇 함량 미달의 철부지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는 법, 국회의원은 엄연히 해당 지역의 현안과 숙원을 해결할 창구이자 민의의 대변자다. 대표가 많아야 권리를 지키기 쉽고, 이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역차별을 받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수도권을 향해 대한민국의 중심이니, 민의의 바로미터니 떠들며 잔뜩 공을 들이는 모양새를 내곤 했다. 여당 대표는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 수도권은 금메달”이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매번 동네를 갈기갈기 찢어 꿰맞추는 장난질의 대상이 되고 그때마다 번번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가고 마는 게 수도권이라면, 수도권 주민들은 ‘호갱’이 맞다. 잇속을 챙기려고 혈안이 된 장사꾼보다 어쩌면 무관심하고 어리숙한 호갱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배상록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