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시화산단 근로시간 ‘최고 53.4시간’ 충격
곳곳 설치된 CCTV ‘근로자 일거수 일투족’ 감시
불량률 높다는 이유로 ‘폭언 시달린 관리자’ 자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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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사회부장
“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이하 생략)”

1970년 11월 서울 청계천 봉제노동자 전태일이 학교 동창들에게 남긴 유서다. 만 4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국내 노동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그의 죽음은 해를 거듭할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꽃다운 20대 청년의 분신(焚身)이 당시 유명무실했던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노동자들의 권익보호 파수꾼으로 자리매김하는 기폭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가 발달하고 고용환경 또한 시대변천상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면서 정규직, 파견근로자, 기간제 근로자 등 같은 일을 하고도 노동신분의 지위는 또 다른 서열화를 낳았고, 노동인권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다.

그가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도 동분서주 찾아다니던 노동청은 지금 고용노동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사이 제2, 제3의 전태일과 같은 노동항쟁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 덕에 근로자들의 노동권이 사회 이슈화되고 숱한 투쟁을 통해 법정 근로시간과 최저임금 현실화, 최저 시급 보장 등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으로서의 위상이 어느 정도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경인일보가 보도한 최대 국가산업단지인 반월·시화산단 근로자들의 감춰진 노동인권 실상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반월·시화산단 입주업체는 지난 7월말 기준 1만8천855개다. 이중 종사자 수 50명 미만 업체가 전체 96%인 1만8천156개다. 반월·시화산단 전체 입주업체 평균 월 임금은 179만5천원, 시급 6천596원으로 전국 평균 월 임금 231만4천원, 시급 1만705원에 비해 턱없이 낮다. 법정 최저임금인 시급 5천580원을 겨우 턱걸이하고 있다. 근로시간도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나 반월·시화산단 내 30인 미만 사업장은 46.6시간, 30~100인 미만 사업장은 49.2시간, 100~300인 미만 사업장은 52.8시간, 300인 이상 사업장은 53.4시간 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잔업, 특근 등을 합쳐 매일 12시간씩 1일 2교대 작업을 하는 업체도 상당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작업장 곳곳에 설치한 CCTV(폐쇄회로TV)를 통해 근로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근로자 A씨는 주어진 할당량을 다하고 잠시 자신의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에 부착된 스티커를 제거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관리자로부터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관리자도 ‘사장님이 밖에서 휴대전화로 CCTV 영상을 수시로 보고 연락해온다’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털어놨다. 지난해에는 20여년간 근무하던 B씨가 회사 뒤편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생산직 근로자들의 생산량과 잔업량 등을 관리하던 반장 A씨는 자살하기 며칠 전 관리자에게 ‘불량률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폭언을 듣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감독관청인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안산지청장이 불법 파견 근로를 한 사업주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공분을 살 정도로 근로자들의 노동인권 실태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 실제 반월·시화산단이 조성된 지난 30년 동안 단 한 번의 노동인권실태 전수조사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3일 전태일 열사 45주기를 맞았다. 여야 정치권에서 수사(修辭)적인 논평을 냈지만 지금이라도 노동인권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반월·시화산단 현장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길 촉구한다.

/김성규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