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국비지원 그림자만 보이는 동굴에 가둘건지…
학문의 근원 ‘인문학 차단’은 대학 정체성 부정행위

대학의 학과들이 통폐합되면서 학부제로 바뀔 당시, 한 대학에서 있었던 실화라고는 하는데, 다시 음미(?)해봐도, 아무래도 유머에 가깝다.
모 대학에서 전기·전자·전파공학과가 한 학부로 통합됐다. 이들 학과는 연구비를 비롯, 상당한 예산이 걸린 프로젝트 수주 등을 놓고 서로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 그러던 중 이들 세 학과가 참여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먼저 전파공학과 교수가 열변을 토했다.
“요즘 휴대전화 없는 사람 있습니까? 21세기는 정보통신의 시대입니다. 통신은 곧 나라의 경쟁력인 만큼, 전파공학과에 연구비를 몰아줘야 합니다.” 이어 전파공학과 학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이에 질세라 전자공학과 교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컴퓨터와 최첨단 전자제어장치 없이 정보통신이 가능합니까? 당연히 연구비는 우리 과로 돌려야 합니다.” 이번에는 박수는 물론 구호까지 터져나왔다.
마지막으로 전기공학과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청중석에서 분에 못이겨 씩씩대는 같은 과 학생에게 한마디 던지는 것으로 강연을 끝냈다. “야! 나가서 도란스 내려!”
최근 인하대 최순자 총장의 문과대학 축소 방침을 접하면서 이 해묵은 유머가 다시 떠오른다. 인문학은 모든 학문과 교육의 토대다. 전파공학, 전자공학을 가능하게 해주는 ‘전기’와 비슷하다. 그런 학문이 시장논리에 밀려 홀대받는 상황이니 이 대학 문과대 교수· 학생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폐지가 거론되는 철학과 등 일부학과 학생들은 정말이지 도란스를 확 내려버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최 총장이 문과대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인하대가 내년 초 교육부에서 공고할 예정인 ‘프라임’(산업연계 교육활성 선도대학)사업에 참여키로 하고 준비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사업은 진로·취업 중심으로 학과를 개편하고 학생 중심으로 학사구조를 개선하는 ‘사회수요 선도대학’ 9개를 선정해 국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대목에서 앞서 세미나 에피소드의 뒷얘기를 이어가 보고자 한다. 물론 기자의 엉뚱한 상상이다.
‘도란스의 반란’(?)으로 인해 세미나는 암흑속에서 진행됐다. 그 때 누군가 뒤에서 손전등을 켰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오직 그림자의 형상만을 보고 판단을 하고 해석을 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제대로 된 세미나가 될 리 없다.
어릴 때부터 평생 동굴의 벽만 바라보도록 사지(四肢)가 묶여 있는 사람들은 등 뒤의 불빛이 벽에 그려낸 그림자를 실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접목해 보았다.
인하대 문과대학 구조조정이 오로지 취업률과 국비지원액이라는 그림자만 보이는 동굴에 상아탑을 가두는 일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 물론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업률이 대학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 중 하나인 현실 속에서 학교측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함부로 ‘도란스’를 내려서는 안된다. 암페어를 조정할 수는 있어도 전원을 끊어버리는, 다시말해 학문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은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대학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다. 한편으로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에서,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이 오히려 더 필요한 때이지 않을까 싶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