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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구로동 땅 재재심 판결. /경인일보DB
1960년대에 서울 구로동 일대의 땅을 정부에 빼앗겼던 원주민들이 재심에 재심을 거치는 긴 소송에서 승소했다.

소송사기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땅을 빼앗겼던 원주민들은 이번 승소로 땅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실제 땅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 대법원은 '재심을 인정한 판단 근거가 잘못된 것이라면 재재심도 가능하다'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려 주목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옛 구로동 농지 주인들의 유족 채모(70)씨 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재재심에서 재심의 국가 승소 판결을 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1980년대에 진행된 재심에서 국가의 승소를 판결했던 법원이 재재심을 통해 이를 뒤집어 애초의 대법원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구로동 농민과 국가 사이에서 진행된

3번의 민사소송과 2차례 형사재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까지 뒤얽힌 구로동 농민과 국가 사이의 다툼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제의 구로동 일대 토지는 원래 일본이 1942∼1943년 군용지로 쓰겠다며 강제로 수용한 땅이다. 1950년 3월 농지개혁법 개정으로 농민들에게 분배됐는데 정부는 1953년 3월부터 다시 국유지라며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1961년 9월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 명목으로 구로동 일대 30만평(약 100만㎡) 부지의 판잣집을 철거하고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민들은 1960년대 중반 "애초 분배받은 농지를 돌려달라"며 9건의 민사소송을 내 대부분 승소했다.

잇따라 패소한 국가는 대대적인 소송사기 수사에 착수했다.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며 농민들뿐만 아니라 농림부 등 각급 기관의 농지 담당 공무원들까지 잡아들였다. 1968년 3월부터 1970년 7월까지 143명이 체포·구속됐다가 소송이나 권리를 포기한다고 약속하고 석방됐다. 41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정부가 수사와 함께 진행한 민사소송 재심은 형사재판이 끝난 1984년부터 재개됐고 국가가 대부분 승소했다. 애초 소송에서 농민들 승소의 근거가 된 공문서 등이 조작됐다는 게 형사판결의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과 국가간의 다툼은 여기서 마무리되지 않았다.

2008년 7월 과거사위가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의혹'을 조사해 "농민들을 집단적으로 불법 연행해 가혹행위를 하고 위법하게 권리 포기와 위증을 강요했다"며 재심을 권고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소송사기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농민 등 26명 가운데 23명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들은 무죄 판결을 근거로 정부가 1980년대 승소한 민사소송 재심을 다시 심리해달라며 재재심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유례없는 재재심 소송에 대해 재심의 기초가 된 민·형사 판결이나 행정처분이 바뀌었다면 재심 판결을 취소하고 종전 재심청구를 기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토지 소유권을 농민들에게 이전하라"는 1966년 9월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땅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1996년 시행된 농지법이 분배농지 등기를 3년 이내에 마치도록 규정했고 현재 토지 소유주의 등기부 취득시효가 완성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게다가 검찰은 현재 과거사위의 진실규명 결정과 그에 따라 재개된 재심 과정의 소송사기 의혹을 수사 중이어서 민·형사 확정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번 재재심에서 원고들이 소유권을 주장한 땅은 4천526평(1만4천45㎡) 규모다. 법원은 다른 원주민들이 제기한 국가 상대 민사소송을 여러 건 심리 중이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