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삼아 옛 여자친구와 혼인신고서를 썼을 뿐인데 제가 유부남이라뇨….”

지난 2014년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준비하던 A(28)씨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정리하다 깜짝 놀랐다. 등록부 상에는 A씨가 옛 여자친구인 B(24)씨와 2년 전 결혼한 것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을 속였다며 화를 내는 여자친구에게 ‘모르는 일’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신뢰가 깨진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황당한 사건의 시작은 장난삼아 쓴 한 장의 혼인신고서였다. A씨와 B씨가 만남을 갖던 지난 2012년 당시 20대 남녀 사이에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혼인신고서를 작성해 보관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들 역시 반쯤 장난삼아 혼인신고서를 작성했지만 두 사람은 4개월 가량의 짧은 만남만 가친 채 결별했다.

그러나 A씨는 B씨가 그 혼인신고서를 진짜 시청에 제출했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20살이던 B씨는 혼인신고서가 갖는 법적 효력을 알지 못했고, 헤어진 이후엔 시청에 혼인신고서를 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B씨는 2년 새 또 다른 남자친구를 만나 임신한 상태로, 이대로라면 태어날 아이가 A씨 호적에 오를 판이다.

B씨는 A씨에 합의이혼을 제안했지만 A씨는 결혼 사실 자체를 취소하고자 B씨를 상대로 의정부지법에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충분한 증거 없이 혼인을 번복하면 법 근간이 흔들린다는 취지로 1심과 2심 모두에서 A씨의 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A씨는 대법원 상고를 한 상태다. 의정부지법 가사부(정완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법률혼주의 아래서는 혼인 무효를 이해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A씨와 B씨의 혼인이 합의 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의정부/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