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선거철엔 낮추지만 당선만 되면 '돌변'
이번 만큼은 한결같은 사람 많이 배출됐으면…

겸수익(謙受益).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몇 날 며칠을 바라봐도 언뜻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자기를 낮추는 데 이익이 있다는 말은 온갖 방식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데 익숙한 요즘 시대에는 받아들이기 더더욱 어렵다. 겸수익은 겸손의 반대말인 자만·교만과 대비해 읽어야 한다. '서경'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만한 자는 손해를 부르고 겸손한 자는 이익을 받는 것이 하늘의 도(道)이다'. 그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아무튼 중국 고대 경전의 중요 덕목으로 '겸손'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 시절의 사회 풍조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듯싶다. '요새 애들은 버릇없다'는 얘기를 아주 오래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검여 유희강은 인천 서구 시천동 출신으로, 중국 위주의 서풍 일색이던 우리나라 서예계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특히 왼손으로 쓰는 '좌수서'에 일가를 이룬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1968년 중풍으로 쓰러져 오른쪽이 마비되면서 모두가 그의 서예 세계가 끝났다고 평가했으나 불굴의 투혼을 발휘한 끝에 그는 왼손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런 그가 1973년에 '겸수익'을 썼다. 그의 좌수서가 최고 경지에 이르렀을 때다. 그는 정점에 다다랐을 때 '겸손'을 떠올린 것이다. 검여의 겸수익은 그래서 남다르다. 기념품으로 받은 녹청자 찻잔의 글씨를 검여가 쓰지 않았다면 아마도 찻잔이나 물 잔 신세를 면치 못하고 날마다 설거지통에서 덜그럭거렸을 것이다.
선거철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겸손 그 자체가 된다. 그런데 되고 나면 그만이다. 자만과 교만으로 넘친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허리를 굽히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한다. 거짓 겸손이 가득한 그들이, 자신들이 잘나서 뽑힌 줄로 선량행세를 하니 우리에게 이익이 뒤따를 턱이 없다. 4년 내내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당리당략에 골몰하던 그들이 또다시 겸손 모드로 전환해 우리 앞에 나서고 있다. 이번만큼은 한결같은 겸손함을 가진 사람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서구청의 녹청자 찻잔 어디에도 서구청의 이름이나 마크가 없다. 단지 찻잔 바닥 뒷면에 '녹청자박물관'이란 다섯 글자 표기만 흐릿하게 했을 뿐이다. 서구청은 녹청자의 상징 지역이 서구이고, 검여의 고향 또한 서구라는 자부심에서 아마도 별다른 표식을 달지 않은 듯하다. 직접 드러내지 않는 고품격 겸손함이다. 다른 지자체의 기념품도 이런 서구청의 겸손함을 닮았으면 한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