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공약으로 강한 의지 드러냈던 '누리과정'
보육대란 이어진다면 '줬다 뺏는' 형국 되고말아
책임 주체들 서로 떠미는 교육현실 안타깝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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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모니터에서 금화가 우수수 쏟아진다. 수십 번 베팅 끝에 겨우 한번 나온 보너스인데 짜릿한 쾌감이 밀려 온다. 이전에 쏟아부은 본전생각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정해진 시간까지만 게임을 하기로 동반자들끼리 철석같이 '맹세'(?)를 하지 않았다면 '일' 냈을지도 모른다. 그 '일'이라는 게 조금만 더하자고 조르는 정도였겠지만….

지난 주말 강원도를 방문한 차에 '체험'을 빙자해 잠시 짬을 내 강원랜드 카지노에 들러보았다. 순전히 관광의 일환이었지만 막상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들이 이래서 도박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출구로 향하다 보니 카지노 한편에 비치된 몇몇 책자가 눈에 들어온다. 강원랜드 측에서 발간한 도박중독예방 현상공모전 수기 작품집들이다. 중독관리센터 등 도박중독을 치료하는 기관을 소개하는 유인물도 비치돼 있었다. 무료로 배포하는 책자인지라 눈에 띄는 몇 권을 챙겨 옆구리에 끼웠다.

어찌 보면 앞뒤가 안 맞는다. 도박장을 마련해 놓고 도박중독 치료 프로그램이라니.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식 아닌가.

그래서인지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책장을 넘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 책자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일종의 '전시 도서'로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막상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온 사연들을 접하다 보니 이들 책자는 어느덧 '권장 도서'로 바뀌고 있었다. 특히 간간이 나오는 '책임도박'(Responsible gambling)이란 용어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도박문제에 대한 책임은 허가권을 가진 국가와 운영권을 가진 사행업체, 그리고 게임을 즐기는 당사자 모두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와 사행업체, 이용자 모두 도박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책임도박'이라고 합니다."

책임도박에 대한 설명을 접하다 보니 현재 교육계 최대의 이슈인 '누리 과정'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누리과정'에 관한 한 우리의 정치나 행정은 도박문제의 책임을 함께 공유하자며 책임도박을 내세운 카지노보다도 못한 듯하다.

'누리과정'을 놓고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 보자. 교육부와 교육청, 지자체장과 지방의회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정면으로 맞붙는 양상이다. 그야말로 책임 실종 사태다. 누리과정이 도입된 이후 교육부를 거쳐간 장관이 3명이나 되지만 그 누구 책임지는 이 없다. 수조원이 드는 새 사업을 벌여놓고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의 결정판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누리과정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다. TV에 나와서는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유아 교육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들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더니 이제는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누리과정 문제가 해결이 안돼 보육대란으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줬다 뺏는' 형국이 되고 만다. 그것은 '병주고 약주는' 것보다 더 저열한 행위다. 차라리 준다고 하지나 말지.

넓은 의미로, 국가 기관이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정치를 책임정치라 한다. 하물며 도박장에서조차 책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데, 책임의 주체들이 정작 책임을 외면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