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지역 후보만 당선가능' 오랜 지방색 깨트려
국민적 분열조장 취했던 정치권에 중요한 메시지

당시 선거에 참여했던 한 대의원에 따르면 당시 선거장 분위기는 김병원 당선인(호남)과 최덕규 후보(영남)가 서로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비록 영호남으로 출신지가 다르나 결선투표에 올라가는 후보를 지지하자는 사전 공감대도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를 믿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골 깊은 지역감정에 서로가 손을 잡겠냐는 슬픈 정치 현실이 덧칠된 까닭이었다. 후보자 간 친분도 이를 극복지 못할 것이란 우려감으로 변했다. 하지만 영남 대의원들 사이에 퍼진 '호남권이면 어떠냐'는 인식이 의외의 결과를 만들었다. 선거전 믿지 못할 일들이 현실이 되면서 역대 최초의 호남권 회장이 탄생했다. 상대적 관심거리였던 수도권 출신의 당선 기대감은 '예선 1위'정도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예선 1위 후보가 결선에서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농협회장 선거 결과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1차 투표에서 경기도 출신 후보가 1위(104표)를, 호남 출신의 김 당선자가 2위(91표)를 차지했다. 지역적 편견을 조금만 보태면 영남표는 수도권 후보로 당연히 와야 했다. 후보 경쟁력, 지역적 성향 등을 감안한 당시 분위기였다.
하지만 1·2위 간 결선투표는 영남권 표심이 대거 호남으로 이동하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 선거전까지 김 당선인의 경력은 흠잡을 데가 없다는 평가였으나 당선에 확신을 주진 못한 상태에서였다. 지역주의를 초월한 농협 대의원들의 합작은 이렇게 선거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마침내 세 번째 도전으로 3수 끝에 당선된 김 당선인은 '준비된 회장'이란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결선투표 직전 특정 선거인단에 후보 지지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는 문제가 불거지는 후문을 남겨 일단 모양새는 빠졌다. 연대를 가능케 할 정도로 후보자 간 밀도 있는 내용의 '딜' 등이 있었는지 알 도리도 없다. 하지만 지역감정 골에 빠져 국민적 분열을 조장해 반사이익을 취해왔던 우리의 정당 정치에 중요한 메시지 만큼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선거 후 당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영호남 지역 벽을 허문 인상적 사례"란 평도 같은 맥락이다. 최종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겠지만 복지 농촌 건설을 통해 234만 농업인 조합원이 웃으며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당선 소감을 밝힌 당선자의 뜻이 희망하는 대로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남과 호남이 지역적 이해관계와 계파를 초월한 결과를 보여준 선거에 박수를 보낸다.
/심재호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