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후 '민생 뒷전' 자기사람 심으며 텃밭만 가꿔
200년 전이나 '인공지능 바둑대결' 현재나 매한가지

총선 후보 결정이 임박하면서 각종 음해와 모략이 난무하고 있다. 현실성 없는 공약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방정부는 지방정부대로 2년 뒤 있을 선거 대비 체제에 벌써 돌입한 모양새다. 단체장들은 서로 뒤질세라 표가 되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올해와 내년에 성과를 내야 2018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배지든, 지방 권력을 쥐기 위해서든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판 주변을 보노라니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곤 하던 TV 속의 그 '암행어사'라도 있었으면 싶다.
200년 전의 암행어사가 쓴 일기를 최근에 읽었다. 1822년, 평안도 암행어사로 나섰던 박내겸(1780~1842)이 남긴 '서수일기(西繡日記)'다. 박내겸은 당시 윤 3월 16일부터 7월 28일까지 암행어사로 평안도 일대를 돌았다. 어느 날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집에서 주인 할머니와 나누던 대화가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마음속 깊이 꽂힌다. "암행어사 소식이 있은후부터 읍내와 촌락을 가릴 것 없이 스스로 몸들을 사려서, 관속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고 토호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제발 바라건대 어사가 내 평생토록 돌아다닌다면 빈궁한 마을의 작은 백성들이 의지해 살 만하겠습니다." 암행어사에게 꼬리가 잡힐 것을 두려워하여 죄지은 관료나 지주들이 스스로 바짝 몸을 사리고 있으니 오히려 백성들이 몸을 펴고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촌로의 이런 푸념에 어사 박내겸은 그만 말문이 막혀 조용히 그 집을 나와야 했다.
생활 방식이 크게 바뀌기는 했지만 200년 전과 지금의 사회가 송두리째 변한 것은 아니다. 총선에 나서는 국회의원 지망생도, 지방 권력을 움켜쥐겠다는 사람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에 최우선 방점을 찍기는 그때나 요새나 마찬가지다.
선거전에서는 '주민'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지만, 승리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어진다. 그러고는 국회 배지를 내세워, 권력을 앞세워 내 사람을 여기저기 심으면서 담당 구역을 마치 자기 텃밭 가꾸듯 한다. 민생은 도탄에 빠지든 말든 다음 선거에 대비한다. 그리하여 당선 횟수를 늘리거나 더 낫다고 여기는 선출직에 도전하기 위한 발판을 쌓는 데 혈안이다. 그런 와중에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공공성이 끼어들 여지는 많지 않다. 그 점은 박내겸이 암행어사로 활동하던 19세기나 인공지능과 최고수 인간의 바둑대결에서 인간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오늘의 21세기에나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들 사이에 실시간 정보공유가 가능한 요즘 세상에 옛날 방식의 암행어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는 우리의 권력자들은 여전히 제대로 감시받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해 목표를 이룬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의 보좌관을 둬 시민 의견을 듣는다고는 하지만 많이 부족해 보인다. 우리 선조들만의 독특한 권력 감시 구조였던 암행어사제도를 21세기형으로 바꾸어 도입한다면 어떨까.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