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4국만에 '첫승'… 인류대표 자존심 지켜줘
전적 밀렸지만 인공지능 만든건 결국 인간 아닌가
이세돌은 4국에서 1승을 거두기까지 1~3국 모두 알파고에 불계패(항복)를 당했다. 불계패는 승부가 뚜렷하게 나타나 집 수를 셀 필요 없이 패한 것을 의미한다. 열광과 환호 속에 최신 기술 앞에서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 이세돌 9단의 자존심이 무참히 무너진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의 능력은 베일에 감춰져 있었지만, 대국을 잇달아 치르면서 알파고의 실력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 초반 해결 능력과 치밀한 수 읽기, 위기 대처 능력과 패싸움까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장점은 무엇일까. 일각에선 알파고 하드웨어를 꼽았다. 1천202대가 넘는 컴퓨터의 계산력은 이세돌 9단 한 명의 두뇌를 완전히 압도했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알파고는 이번 대국을 통해 마치 이세돌 9단의 수를 일찌감치 파악한 듯 그를 농락했다. 전문가들은 알파고의 수를 읽어보려 했지만, 의도를 알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 '배움의 연속'이라는 말을 내비쳤다.
객관적으로 알파고는 대단한 두뇌를 가진 것임에는 틀림없다. 구글의 클라우드 컴퓨터를 기반으로 초당 10만 가지 수를 고려하는 계산력은 아무리 인간 최고수라도 당해내기 어렵다. 또 이세돌 9단은 이런 알파고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대국 불공정 논란이 뒤늦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만큼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맞서는 것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고, 알파고에 이긴다면 '인간 승리를 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세돌 9단은 제4국에서 마침내 알파고를 무너트리며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180수 만에 알파고에 항복을 받아내며 대망의 첫 승을 거둔 것이다. 이세돌은 3패를 당하면서도 인공지능을 이기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끝까지 부딪혀 첫 승리를 기록했다. 슈퍼컴퓨터 1천202대로 무장한 알파고의 계산 능력을 뛰어넘은 인간 승리인 셈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대결하는 동안 국내에는 바둑 열풍이 불었다. 일부 기원이나 바둑협회에는 바둑을 배우려는 학생과 일반인들이 몰리면서 바둑 신드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서점에는 바둑 관련 책들이 진열대 중앙에 위치하는 등 바둑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 또 일부 학부모들은 '알파 고(高)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 아이가 중 3인데 알파고에 보내야겠다'는 농담 같은 얘기도 들렸다.
이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마지막 대국을 남겨 놓고 있다. 이세돌 9단은 1~3국에서 패한 뒤 방 안에서 다른 동료들과 알파고에 대한 연구를 더욱 했다. 그러면서 그의 말대로 승리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알파고가 아직 완벽히 신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도 약점이 있다"고 했다. 인류 대표로서 자신의 능력을 끝까지 믿는 모습 자체로도 이세돌 9단은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4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 문화의 정수 바둑이 비록 21세기 슈퍼 '인공지능'에 밀렸지만,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인간의 자존심을 세워준 인간 대표 이세돌 9단의 반격이 더욱 기대된다.
/신창윤 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