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후 '정치개편·개혁'한다지만 지금이 그 시기
4년전 받은 '장밋빛 약속어음' 이번엔 부도 안 나길

이달초부터 공천에 들어간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여야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수 교체보다는 계파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자파 후보를 공천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 위주의 살생부 설에서 시작된 공천작업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탈당과 국민의당 합류, 그리고 친노 패권주의 청산에다 막판 새누리당의 친이계와 친유승민계 대거 숙청으로 공천이 사실상 일단락됐다.
총선때 마다 단골손님인 살생부가 이번에도 괴담 수준으로 나돌면서 조선조 단종 대에 일어난 계유정난이 떠올랐다. 수양대군이 자신의 집권을 반대할 만한 신하들을 모두 제거하고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것이다. 한명회가 직접 살생부를 만들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영의정 황보인, 우의정 김종서, 이조판서 조극관 등이 죽임을 당했고 반대로 이 거사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인사들은 정난공신에 책봉돼 벼슬에 올랐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철퇴나 칼을 이용한 정적제거 대신 공천제가 도입됐다. 역대 총선에서도 여야 모두 개혁공천이란 미명 속에 실세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파를 대거 공천에서 아웃시켰다. 이번 총선에선 방식이 더 다양해졌다. 완전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겠다며 상향식 공천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결론은 과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역기득권을 위한 경선과 전략공천이라는 사실상의 사천이 횡행했다는 비판도 당내에서 쏟아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막바지 친이계 이재오 의원과 친박계 윤상현 의원 등을 동반 탈락시켰지만 큰 그림은 박근혜 정부의 총선후 레임덕 방지용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친박-비박계간 나눠먹기 속에 친이계는 된서리를 맞으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중진들이 대거 공천학살의 주인공이 됐다. 친박계가 향후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불가피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강남벨트를 축으로 대구·경북과 성남분당 등 새누리당 당세가 강한 지역에 대거 친박계를 등용,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민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소 의미있는 공천을 했다. 김종인 대표가 전면에 나서 당내 최대계파인 친노패권을 청산했다는 평가이다. 이해찬 문희상 정청래 강기정 의원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당내 친노 중진들이 컷오프되면서 당공천에서 멀어졌다. 상당수 당내 현역들도 물갈이 태풍을 비켜나지 못했지만 국민 감동의 눈높이를 맞추지는 못했다. 그들만의 내홍이 있지만 리그전을 위한 준비는 끝나가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우리 정치문화에서 총선 정국이 끝나면 정치개편이나 정치개혁이 화두가 된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지도자라면 누구를 '죽이는가'보다 누구를 '살리는가'에 더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줘야 한다. 국민들은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천을 통한 정치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 두텁고 계파간 나눠먹기의 극치를 달리면서 이제는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수준에 다달았다. 이달 말부터 공천 후보들의 본격적인 유세로 국민들은 장밋빛 희망이 가득차 있는 약속어음을 받게 된다. 지난 60년간 정치인들에게서 받은 약속어음의 부도로 국민들이 피땀을 흘렸다. 4년전에 받은 약속어음도 부도났는데 이제 또다시 약속어음을 받게 됐다. 부디 이번엔 부도나지 않는 깨끗한 약속어음이길 바란다.
/김학석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