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저·왕림·상기리 자연부락
올 9월부터 건설 공사 시작
"하루 아침에 남남되는 꼴"
분진·소음도 우려 주민 반발
국토부 "지하도 만들어 왕래"
23일 오전 화성시 농촌마을인 팔탄면 하저리. 파란색의 플라스틱 판, 기와 등이 얹어진 옛 가옥 1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하지만 이 가옥들은 오는 9월 봉담~송산 고속도로(왕복 4차선·18.15㎞) 건설공사가 시작되면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문제는 단순히 집을 잃는 게 아니다.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하저리는 현재 꼼짝없이 마을이 둘로 갈라질 처지다. 봉담~송산간 고속도로가 마을 한 가운데를 관통하도록 계획됐기 때문이다.
봉담~송산 고속도로가 지나는 인근 마을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백 년 전부터 자연부락을 형성해온 봉담읍 상기리 마을도 고속도로가 들어서면 61가구가 13가구와 48가구로 갈라지게 된다. 봉담읍 왕림리 마을도 고속도로 부지와 인접한 10채 가옥이 사라지고 마을은 두 쪽이 난다. ┃위치도 참조
국토교통부는 갈라진 마을과 마을 사이에 지하도로를 만들어 왕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결국 서로 다른 마을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중론이다. 왕림리 최중익 이장은 "수십 년 동안 가족 같이 지내던 마을 이웃들이 갑자기 들어서는 도로 때문에 하루아침에 남남이 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오는 2019년 1월 개통 예정인 봉담~송산 고속도로 노선을 둘러싸고 주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생활권을 공유하던 마을이 반토막 나고, 분진·매연·소음 등으로 환경피해가 우려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저리·왕림리·상기리 등 주민들은 이달 들어 봉담~송산 고속도로설치반대연대추진위원회(이하 반대위)를 결성했다. 반대위는 고속도로 건설 시행사인 (주)경기동서고속도로가 주관한 주민설명회를 거부하고 사업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대위 이영돈 위원장은 "마을 한복판을 지나는 고속도로를 만들 계획이라면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필요가 있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며 "지역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피해받는 작은 마을 주민은 뒷전으로 미룬 막가파식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봉담~송산 고속도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주민에게 공개하고 경기도와 화성시 측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성시의 경우 도로예정부지에 지장물이 많아 도로 선형을 짜는데 어려움이 있어 현재의 노선이 최적의 결과물"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만큼 세부 설계단계에서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하고 주민 설명회를 열어 교량과 통로박스를 추가 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상록·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