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1이 넘는 엄청난 경쟁률에다, 최근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시험 주관 부처인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들어가 성적을 조작한 사건까지 터진 탓에 시험장 분위기는 예년보다 한층 무거웠다.
서울 종로구 풍문여고 고사장에는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 1시간여 전부터 하나같이 굳은 표정을 한 채 하나 둘 입실했다. 교문 옆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줄담배를 피우는 수험생도 여럿 있었다.
두 번째 응시라는 홍모(24)씨는 "작년에는 모의고사 보는 기분으로 응시했는데 이번에는 기분이 다르다"면서 "공부를 많이 못 해 점수가 잘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잘 안 되더라도 좌절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사장 경비원들은 수험생이 아닌 외부인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한 경비원은 "최근 정부서울청사 침입 사건 때문에 반드시 수험생만 들여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인사처는 이번 시험이 '국가공무원 지역인재 7급 필기시험' 합격자 명단 조작 사건 이후 첫 시험이란 점에서 시험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쏟았다.
중앙부처 소속 공무원 1천91명을 시험 관리요원으로,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 2만1천477명을 시험 감독관으로 전국 고사장에 투입했다. 문제지 수송 등을 맡을 보안요원도 증원했다. 시험장 입구에는 경찰관이 배치됐다.
서울 강남구 삼성2동 언주중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응시생들도 핵심 정리를 한 노트를 들고 마지막 순간까지 복습에 열중했다.
수험생 곽모(26)씨는 "대학 4학년 때 취업을 준비하다 급여 수준이나 조기퇴직 압박 등을 고려하면 공무원이 낫다고 생각해 방향을 틀었다"며 "준비한 지 7∼8개월밖에 안 돼 이번에는 어려울 듯하고 6월 시험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공무원 시험 응시생 송모(26)씨가 정부청사 인사처 사무실에 들어가 성적을 조작한 사건은 다른 수험생들에게도 화두였다.
한 수험생은 "작년에 고사장에서 '다리를 심하게 떤다'는 이유로 수험생 둘이 싸우다 퇴실 조치됐는데, 그때는 뭐 저렇게까지 예민한가 싶었다"며 "1년 지나 보니 왜 그렇게 예민해지는지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수험생은 "청사에 침입한 수험생도 조금 이해가 간다"며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합격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니까 그랬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수험생은 "몇 년 전에도 정부청사에 누가 들어가서 투신한 일이 있었던 것을 보면 청사 보안이 너무 허술한 듯하다"며 "그 공무원 준비생이 시험 압박 때문에 범행했다고 하는데 점수가 낮은 것을 보면 공부를 안 한 것 같고, 그냥 피해의식이 있는 개인 차원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모(25·여)씨는 "성적이 조작되고 시험문제가 도난당했는데 같은 수험자 입장에서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다"면서도 "국가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인 만큼 국가에서 적절한 사후 조치를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무것도 신경도 쓰지 않고 시험에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산지역 72개 고사장에서도 성적조작 사건의 여파로 예년보다 한층 긴장된 분위기 속에 시험이 치러졌다.
매년 고사장 주변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관 외에 정문과 현관 입구에도 경찰관이 배치됐고, 보안요원이 수시로 고사실 주변을 돌며 관리했다.
한 시험 감독관은 "몇 년 전에도 시험 감독관을 했는데 올해는 그때보다 고사장 분위기가 무겁고 처져 있다는 느낌이 전반적으로 든다"면서 "민감한 수험생들이 이런 분위기에 동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행정직 시험이 치러진 대전 서구 삼천중학교에서도 '공시생'들이 대부분 홀로 대중교통을 타고 조용히 입실해 차분히 시험에 임했다.
응시생 김모(27)씨는 "성적조작 사건은 들었지만, 시험 직전이라 사실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며 "경쟁률이 높다고 해 걱정이지만 준비한 만큼만 점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담담히 말하고 수험장으로 들어갔다.
1만3천890명이 응시한 광주에서도 예년보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21개 중학교, 521개 강당에서 시험이 진행됐다.
전국에서 4천120명을 선발하는 이번 시험은 사상 최다 인원인 22만1천853명이 접수해 53.8:1의 경쟁률을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