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직 차가운 눈물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은 세월호 희생자 미수습가족이 통곡의 등대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오열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9명
가족들 발못떼고 항구지켜
"하루 빨리 인양 됐으면…"
오늘도 찬바다만 우두커니


14일 오전 10시 진도군 팽목항.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는 팽목항은 이따금 항구에 정박한 배의 탑승을 기다리는 차량과 선원들이 오갈 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적막감만 감돌았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정부 관계자, 자원봉사자 등 수천명이 두 손을 모아 어린 안산 단원고 학생 등 탑승객의 생환을 기도했던 2년 전과는 달리, 이날 팽목항은 '세월호 인양' 글귀가 적힌 노란 깃발만 나부끼고 있었다.

그나마 붉은 색깔의 '통곡의 등대'까지 이어진 '기억의 벽'만이 지난 2년간의 모습을 간직한 채 세월호 2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대신 말을 해 주는 듯했다.

지금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맹골수도의 차디찬 바닷속에 잠들어있는 9명이 하루빨리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속한 세월호 인양을 염원한 벽의 글이 마치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라고 대신 사과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팽목항에 마련된 가족 숙소에서 만난 권오복(60)씨는 "모두가 팽목항을 떠났다. 이제는 미수습 가족들과 안산시·경기도교육청 공무원, 경찰 이외에는 이곳에 거의 오질 않는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사고 직후부터 2년 동안 팽목항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권씨는 2년 전 제주도로 전원생활을 꿈꾸면서 온 가족이 이사를 가던 동생 재근(당시 50세)씨 가족 3명을 한 꺼 번에 잃었다. 그나마 계수인 한윤지(당시 29)씨의 시신은 찾았지만 친동생과 조카 혁규(당시 6세)군은 아직도 저 넓은 서해 바다에 남겨져 있다.

눈물마저 메말라 버린 권씨는 "하루빨리 세월호 선체가 인양돼 동생과 조카가 내 품으로 돌아오면 함께 여기를 떠날 것"이라고 말하고선 바닷가로 힘겨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날은 그나마 팽목항을 찾는 각계의 발걸음이 이어지기 시작하는 듯했다.

지난 13일 사고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이주영 의원이 투표를 마치고 팽목항을 찾아 가족을 위로했고 최근 팽목항과 4.16㎞ 떨어진 진도 백동리 무궁화동산에 조성된 '기억의 숲'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에도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간부들과 함께 팽목항 분향소에서 분향을 한 뒤 남아 있는 가족들과 세월호 참사 영상을 보면서 추모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단원고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47)씨는 이 교육감을 보자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끝내 터트렸다.

무릎을 꿇은 채 "딸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단원고 기억교실을 존치해 달라"는 이씨의 애원에 이 교육감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흩날리는 꽃잎으로 가득한 이렇게 아름다운 그 날의 봄이 다시 왔지만 당신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추모의 글을 남긴 이 교육감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조용히 팽목항을 떠났다.

세월호 2주기인 16일에는 김영석 해수부장관과 이낙연 전남도지사, 세월호 유가족 등 2천500여 명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를 위한 '기다림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팽목항 서해바다는 "절대 잊지 말아 달라"는 소망을 담은 채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팽목항에서/김범수기자 faith@kyeongin.com